[호텔업의 발전과정]우리나라 숙박시설발전과정
- 최초 등록일
- 2006.04.25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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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의 숙박시설의 발전과정을 상세히 설명한 것입니다.
목차
1. 고대의 숙박시설
2. 조선(朝鮮)시대의 숙박시설
3. 구한말(舊韓末)의 숙박시설과 호텔의 생성
4. 철도(鐵道)호텔의 발전
5. 한국 현대호텔의 등장과 발전과정
본문내용
1. 고대의 숙박시설
한국의 숙박시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타나는데 관영(官營)으로서 역관(驛館)이 신라 소지왕 9년에 개설되었다. 역관은 주로 관리들의 지방 순찰시 숙소로서 이용되었던 곳이다. 신라의 삼국 통일후 장보고에 의해서 당(唐)나라에 신라방(新羅坊)이 건립되어 정치․외교사절이나 유학을 하고 있는 신라인들에게 숙소로 제공되었다. 장안(長安)으로 가는 길목에는 신라관(新羅館)이나 신라원(新羅院)이 설치되어 여행객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 고려(高麗)시대에는 참역제(站驛制)가 발달하여 역마를 두고 역장, 역리 등의 관리가 있어 공문서의 전달, 공물의 수송, 공무로 왕래하는 관리들에게 교통 및 숙박 등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또한 최초로 공설주막이 개설되어 선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절간에서도 숙식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그리고 고려말에는 송(宋)나라와 활발한 무역거래를 행하면서 두 나라 상호간에 속박시설을 만들어 사신과 상인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였다.
2. 조선(朝鮮)시대의 숙박시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참역제가 지속되어 역이 산재하고 있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전국에 약 537개의 역이 있었으나 새로운 숙박시설인 관(館)이 여행을 하는 관리들을 위하여 지방관위에 부설되었으며, 하급숙박시설로 원(院)이 설치되었으나 원은 그 사용범위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점차로 폐지되고 일반여행자를 위한 점(店:주막)이 발달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의 관은 대부분 한성에서 의주까지 설치되었다. 한성에는 명나라의 사신을 위한 태평관, 일본의 사신을 위한 동평관, 여진족을 위한 북평관이 건립되었는데 임진왜란 때에 태평관이 불타버리자 과거시험 장소인 모화관을 태평관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조선조 초기에 생겨난 점의 영업형태가 커지고 교역행위가 확대됨에 따라 객주(客主)라는 계층이 나타났다. 이에는 주요도시와 항구를 중심으로 위탁매매를 주업으로 하는 물상객주와 숙박을 전문으로 하는 보상객주가 있었으며 조선말기에는 객주조합을 결성하여 전국의 경제활동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러한 객주들은 19세기말에는 인천, 부산, 원산 등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에 약 480여 개소에 달하였다.
참고 자료
신호텔경영론 (신현주 김재민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