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남한과 북한의 고대사 인식의 차이
- 최초 등록일
- 2005.11.10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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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한 고대사를 동명왕릉과 단군왕릉을 통해 인식차이를 비교한다
목차
1.서론
2.본론
(1)단군릉
(2)동명왕릉
3.결론
본문내용
북한의 평양에서 단군릉이 발굴됐다. 이 단군릉에서 나온 유물은 사람의 유골과 금동 왕관 앞면의 세움장식과 돌띰띠 조각이 각각 1점씩, 금동띠의 패쪽 1점과 쇠로 만든 못 6개가 출토되었다. 단군릉은 남한과 북한간의 많은 의견이 대립되어 있다. 평양에 있는 단군릉은 문헌적인 근거로 보았을 때 남한에서도 단군릉이라는 것에는 의견이 없지만, 그 유물의 해석에서는 남북한 심한차이를 드러낸다. 북한에서는 단군릉에서 나온 유골을 전자상자성 공명 연대 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 5011년 전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유골이 5000년이 지나도 보존될 수 있었던 근거로 석회암지대에 묻혀있어 화석화과정이 이루어졌고, 또 토양이 중성토양이라서 뼈가 부식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유골뿐만 아니라 금동장식 유물들도 유골과 같은 연대의유물이라고 주장한다. 금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청동제작술이 발달되어야 하는데 이는 5000년 전에 이미 우리나라가 청동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객관적인 사실이 결여된 채 많은 논란을 불러오기 쉬운 주장들이다. 남한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첫째로, 전자상자성 공명 연대측정법에서 나온 그 연대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북한에서는 이 측정법이 조가비, 뼈, 질그릇 등 고고학적 대상 시료들을 거의 모두 측정하며 또한 측정 시료가 몇 그람이면 충분하고 측정 정밀도가 높을 뿐 아니라 오차가 적다고 하여 사용하는 측정법으로 통계학적으로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유골의 절대 년도가 과학적으로 확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측정법은 100만년 이전의 시료에 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써 유골을 대상으로 측정했을 경우에는 심각한 오차가 날 경우가 있다는점을 간과 했다. 평소 절대연대 측정을 하지 않던 북한이 일부러 사용한 방법으로 설령 뼈의 연대가 맞다 해도 그것이 단군의 유골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근거가 없다. 그리고 북한학계의 연대측정에 관한 많은 논문은 실험방법에 관한 서술이 너무 간략하여 측정방법이나 자료의 정확도를 추정키 어려워서 측정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판단할 수 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