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장로교 표준문서에 대한 서약
- 최초 등록일
- 2004.10.01
- 최종 저작일
- 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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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적으로 교회는 삼위일체 논쟁과 기독논쟁을 거치면서 이단을 정죄하고 정통교리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미합중국 장로교회 역사의 초창기에 있었던 웨스터민스터 신도게요서와 대요리문답에 대한 서약논쟁을 중심으로, 장로교표준문서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입장을 정립하고자 한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본론
Ⅲ 맺는 말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초대교회 이래로 교회는 교회 안팎의 이단들의 도전에 대하여 응전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그 전통적 진리를 보수하여 왔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삼위일체 논쟁과 기독논쟁을 거치면서 이단을 정죄하고 정통교리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미합중국 장로교회 역사의 초창기에 있었던 웨스터민스터 신도게요서와 대요리문답에 대한 서약논쟁을 중심으로, 장로교표준문서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입장을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Ⅱ 본론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거이 초창기로부터 웨스터민스터 신도게요서와 대소요리문답의 위치는 논란의 초점이 되어 왔다. 미합중국 내에 프란시스 마케미(Francis makemie)의 지도아래 첫 장로회 노회가 조직된 것이 1706년이었다. 그 노회는 흔히 독노회(the General Presbytery)라고 불려지며, 펜실베니아주 필라델비아시에서 열린 것을 기념하여 필라델피아 노회(the Presbytery of Philadelpia)라 불리워진다.
대회가 조직된 것은 이로부터 10년 후인 1716년의 일이었다. 1716년에 대회는 조직되었으나 교회의 표준문서는 1729년에 이르기까지 공적으로 채용하지 못하고 대회이후 10여년에 걸쳐 교회의 교리적 표준문서를 둘러싸고 논쟁이 그치지 않았다. 결국 1729년 대회(the General Synod)에서 웨스터민스터신도게요서와 대소요리문답이 새 교회의 표준 문서로 채택되었다. 1729년의 “채택안”은 신대륙에서 새로 출발하는 장로교회에 결정적인 교리적 기초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오랫동안 관례가 되어 온 목사에 대한 시험대 역할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