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고려시대 군사제도
- 최초 등록일
- 2023.09.30
- 최종 저작일
- 2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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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군사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더불어 부병제와 군반제(+이원적구성론) 논쟁에 대한 내용을 담고있습니다. A 받았습니다.
목차
1. 서론
1.1. 고려의 군사조직
2. 부병제론과 군반제론
2.1. 부병제론
2.2. 군반제론
2.3. 이원적구성론
3. 부병제론과 군반제론의 쟁점
3.1. 주현군의 번상 여부
3.2. 중앙군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
3.3. 군인전의 내용과 성격
4. 결론
4.1. 논쟁의 의미
5. 출처 및 참고서적
본문내용
고려의 군사조직은 수도의 중앙군과 지방군인 주현군 · 주진군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중앙군은 경군이라고도 불리며, 2군 6위로 편성되어있다.
2군은 중앙군의 핵심부대로, 국왕과 궁실을 호위하는 친위부대였다. 이는 2군을 구성하는 응양군 · 용호군을 부르는 별칭이 근장(近仗)이었다는 점, 그 장군을 친종장군(親從將軍)이라 칭하고, 용호군을 달리 친어군(親禦軍)이라 칭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과 더불어 《고려사》 백관지에 언급된 바에 따라서, 2군은 6위보다 상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6위는 개경을 방어하는 수도 경비부대로, 주로 전투부대에 속했다. 그중에서도 좌우위 · 신호위 · 흥위위가 경군의 핵심이 되는 주력부대였다. 이는 보병이라 추측되는 보승(保勝)과 기병이라 여겨지는 정용(精勇)이 3위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으며, 또한 그 군사의 수가 전체 중앙군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외에도 경찰 임무를 맡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위, 의장 임무를 맡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천우위, 궁성 내외의 문을 수비했던 감문위가 있었다.
이때 2군 6위의 중앙군을 구성하던 군인의 신분이 농민층이었는가, 혹은 군반씨족이었는가에 대해서는 거듭 논란이 되어왔다. 군인의 신분을 농민층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2군 6위를 부병제에 입각한 병농일치의 군대로 이해했고, 이를 부정하는 견해에서는 그들을 전문 직업군인인 군반씨족으로 이해했다.
고려 말 정도전을 비롯한 일련의 개혁론자들과 조선 초 《고려사》 병지의 편찬자들은 고려의 군제를 당의 부병제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였다. 《고려사》 병지 서문과 주현군조 서문에서 당대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부병제론은 1960년대까지 그대로 받아들여 졌는데, 50년대 말 이를 비판하는 반론이 제기되며 새로이 군반제론이 등장하였다.
참고 자료
권영국, <고려시대 군사제도 연구>, 경인문화사, 2019
박용운, <고려시대사>, 일지사, 2008
박도식, <한국중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