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은 폭군일까?
- 최초 등록일
- 2019.11.25
- 최종 저작일
-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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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해군은 폭군일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광해군 즉위과정
2) 경제,정치적 업적
3) 광해군 폐위
Ⅲ. 결론
본문내용
역사는 흔히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어떤 사건이든 그 사건을 보는 시각에 따라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렇게 해야 했던 명분이 있다. 그렇기에 역사를 평가할 때는 하나의 시각에서만 ᄇᆞᆯ보아서는 안된다. 또한 당대의 사건을 현 시점의 가치관으로 평가하는 편협한 사고도 위혐하다. 수업시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던 적이 있는데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것이 한계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당시의 상황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한 민족이라는 인식은 없었기 때문에 당나라를 끌어들었다고 자주적인 통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를 볼 때 하나의 시각에서만 보아서는 안된다.
조선왕조에는 총 27명의 왕들이 있다. 그 중 군의 묘호가 붙은 왕은 광해군과 연산군 뿐이다. 우리는 보통 광해군에 대해 일반적인 평가를 내리는 데에는 ‘군’이라는 왕의 이름이 그를 부정적인 임금으로 인식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본론에 앞서 조선왕조의 묘호에 대해 알아보자. 묘호(廟號)란 국왕의 승하 후 그 공덕을 기리어 붙이는 이름이다. 먼저 태조는 개국 임금의 묘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태조라는 묘호를 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창업지군칭조 계체지군칭종’이라 하여 ‘나라를 연 임금은 조(祖)라 하고, 부자간 왕통을 계승한 임금은 종(宗)이라 한다.’고 전해진다. 덧붙여 ‘입승활조 계승왈종’이라 하여 ‘세자가 아닌 자가 왕이 되면 조(祖), 세자가 계승하면 종(宗)’이라는 원칙이 있었다. 조카 단종의 뒤를 이은 세조가 조라는 묘호를 받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유공왈조 유덕왈종’이라 하여 ‘공이 있는 자는 조(祖), 덕이 있는 자는 종(宗)이라 한다.’는 묘호에 관한 원칙이 있다. 그리고 광해군의 ‘군’은 폐위된 왕을 뜻하며 종묘에 들지 못한 임금, 묘호가 없는 왕인 것이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역사에 부정적으로 기록된 광해군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광해군 [光海君] (두산백과)
“조선시대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원구(1995))
yutube. “설민석 선생님의 광해”. https://www.youtube.com/watch?v=W7medYdsAGc
(2019.11.09))
[네이버 지식백과] 광해군의 업적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조선시대 유배문화),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광해군 - 그 위험한 거울 저자 오항녕|너머북스 |201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