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요] 우적가
- 최초 등록일
- 2003.12.16
- 최종 저작일
- 2003.12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여러가지 논문들을 비교 고찰한 자료입니다.
여러분들께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들어가면서...
2. 논문
(1) '우적가(遇賊歌)' - 최성호
(2) '영재우적(永才遇賊)' - 홍기삼
(3) '우적가' - 강석근
3. 나오면서
본문내용
「우적가」는 원성왕 때인 신라 하대에 지어진 작품이다. 신라의 하대는 통일 후 국토가 확대되고 다스려야 할 이질적인 백성들이 많아졌는데도, 철저한 골품제에 의한 귀족정치에만 의존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새로운 역사와 사회발전의 저해 요인이 되었다. 비대해진 귀족들은 분열을 일삼고 힘을 길러 왕권을 노렸고, 이러한 사회에 대한 불신과 서민들의 개혁의지 등이 하나로 뭉쳐 당시의 시대나 사회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도둑이나 반란자였다. 설화에 등장하는 60여 명의 도적들이 생겨난 배경은 이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60여 명의 도적들이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가가 문제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남악(현 지리산)으로 가는 대현령에 있었고 60여 인의 집단이었으며, 향가를 잘한다는 석영재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지식이 있고, 도둑의 처지이면서도 향가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무리들이었다. 또 그 노래에 감동할 수 있는 지성과 감성을 가지고 있고 영재에게 비단 두 필을 바쳤으며 깨달음을 얻어 영재의 제자가 된 후 지리산에 들어가 다시는 세속에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도둑 떼들의 성격을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는 그들이 단순한 도둑 떼가 아니라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도둑질이 본업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욕구 충족의 한 방편으로 도둑질을 하는 무리였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