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 신학
- 최초 등록일
- 2022.04.12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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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족화해 신학"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몸 말
1. 개념 "화해"의 성서적 이해
2. 남북한 갈등의 희생양과 속죄로서 교회의 화해 역할
3. 화해의 축제 : 희년
Ⅲ. 나오는 말 : 화해의 선교를 향하여
본문내용
남한 경제의 IMF 간섭 이전만 하더라도 한반도에서의 남북통일은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 질 것이라는 예견이 있었다.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로 인하여 이것은 사실로 여겨졌었다. 그런데 1997년 11월 이후 남한에 불어닥친 달러 부족으로 인한 경제위기는 "북한이 망하기 전에 남한이 먼저 망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자조를 낳게 되었다. 이로 인해 통일 논의는 사실상 경제 우선 논의에 밀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기반이 경제적인 측면이 강한 흡수통일론은 불가능한 형편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을 위한 방법은 무력을 제외하면 화해를 통한 평화적 통일문제의 접근을 택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98년 새로운 정부의 출범은 지금까지 소위 북풍의 소용돌이에서 항상 피해 당사자였지만, 남북교류에 관한 한 한층 승화된 화해를 향한 대승적 차원의 자세를 가진다. 남북교류에 관한 첫 단추로 남북이산가족의 상봉 주선과 TV. 와 Radio시청 허용의 제안, 비록 남북 차관급회담이 비료지원을 둘러싸고 98년 4월 17일 결렬되었을지라도 뒤이어 재벌기업총수의 소 떼를 몰고 직접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왕래케 한 일 그리고 같은 시기에 발생한 북한 잠수정의 동해안 "침투도발"에도 불구하고 소위 "햇볕론"을 꾸준히 지속시킴으로서 금강산 개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은 상당히 차별화된 정부의 태도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진보적인 통일 논의를 가능케 할뿐만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민족교류가 진행될 것이란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입장은 무력이나 흡수통일이 아닌, 민족화해를 향한 평화통일 운동을 펼치는데 있어서 그 전 단계의 해결해야 할 통로이기 때문이다. 또한 평화통일로 향하는 근본적인 전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들의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교회의 차원에서..
<중 략>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