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사,몽고제국 고려,원 고려
- 최초 등록일
- 2022.03.22
- 최종 저작일
-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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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260년 쿠빌라이(忽必烈)가 대몽고국 5대 대칸으로 즉위했다. 그는 초원을 중심으로 하는 전임 대칸들의 정책을 변화시켜 한족 지역에 수도를 정하고 한족의 법을 취했다. 이로써 대몽고국이 원 왕조로 정착되도록 하였다. 또한 고려에 대해 종주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고 압력을 더욱 강화하여 고려의 정리를 조종하다시피 하였다. 또한 고려의 일부지역을 직할령으로 만들었다. 제주도에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를 두어 목마장을 만들고, 영흥지방에는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두어 철령 이북의 땅을 소속시켰으며 평양지방에는 동녕부(東寧府)를 설치하여 자비령 이북을 귀속시켰다. 그러나 고려의 강력한 요구로 동녕부와 탐라총관부는 충렬왕 때 폐지되고 이 지역을 되찾았다.
1259년 고려의 세자 왕전(王佃)은 몽고의 요구에 따라 대칸인 쿠빌라이를 알현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즉위하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고려 원종(元宗)이다. 같은 해 고려에서는 세자 왕희(王僖)를 몽고로 파견해 쿠빌라이의 즉위를 축하하였고 이때 까지만 해도 양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다시 몽고의 가혹한 조공과 착취가 시작되었고 고려는 겨우겨우 요구에 응하였다. 그리고 원의 일본 정복에 고려가 안내를 책임지도록 하고 그에 필요한 선박 1000척의 건조를 명령하고 감독하였다. 몽고의 지배로 고려의 인구는 격감하고 모든 것이 황폐해졌지만 몽고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1269년 권신 임연(林衍)이 원종을 폐위시키고 왕창(王淐)을 옹립했다. 이 사실을 안 몽고는 심하게 고려를 문책했고 다시 원종을 복위시켰다. 이에 임연은 울분하다가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고려의 분열을 초래하였다. 복위된 원종은 칙서를 내려 강화도에서 나와 한양으로 돌아오기를 명하였는데, 삼별초(三別抄)는 명을 듣지 않고 거사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배중손(裵仲孫)의 지위 하에 왕온(王溫)을 임금으로 옹립하고 자체의 관리 기구를 설치하였다. 이에 원조과 고려의 연합군은 강화도를 공격하였고 삼별초는 전라도로 퇴각하여 계속 저항하였지만 1237년 결국 평정되었다.
참고 자료
장페이페이 지음, 김승일 옮김, 《한중관계사》, 범우, 2005.
한영우 지음, 《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