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해방 후 남북한의 시기별 역사인식의 차이와 해석"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해방 이후 남북한 역사학 전개
1. 남한의 역사학
1) 해방에서 4․19 혁명까지
2) 4·19 혁명에서 군사독재체제 해체까지
3)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2. 북한의 역사학
1) 해방에서 6·25전쟁까지
2) 휴전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3) 1960년대 후반 이후
Ⅲ. 남북한 역사인식의 차이
1. 고구려 중심 역사관
2. 역사의 주체 : 피지배계급 인민
3. 3․1운동
4. 임시정부
Ⅳ. 맺음말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한 사회의 역사인식이란 그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인식은 세계를 보는 관점이자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지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한과 북한의 역사인식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는 한민족으로 같은 역사를 가졌지만 그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인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인식이 달라진 과정을 남한의 역사학과 북한의 역사학으로 나누어 먼저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점을 다르게 보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Ⅱ. 해방 이후 남북한 역사학 전개
1. 남한의 역사학
해방 이후 남한의 역사학의 과정으로 ‘해방에서 4·19 혁명까지’, ‘4·19 혁명에서 군사독재체제 해체까지’,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1) 해방에서 4․19 혁명까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을 하고 있던 역사적 유파로 실증사학, 민족사학, 사회경제사학, 이렇게 세 갈래의 역사적 유파가 존재했다. 해방 후 1세대의 신진 사학도들은 손진태, 이인영, 이병도의 지도를 받으면서 다양한 학풍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분단된 정부와 6․25전쟁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였고, 그로 인해 많은 지식인들이 신념에 따라 혹은 상황에 이끌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역사학자들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사적 유물론 입장에서 연구한 백남운, 이청원의 뒤를 이은 전석담, 박극채, 김한주, 박시형 등 사회경제사학자들은 대거 북으로 갔다. 민족사학 유파의 경우는 박은식, 신채호와 동제사 동인으로 활약한 안재홍, 정인보, 문일평의 뒤를 계승한 손진태, 이인영 등이 있었는데, 그들은 신민족주의 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좌우의 극한대립을 진보적인 우파의 시각에서 조정하려 했지만, 결국 북한정권에 의해 납북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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