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 최초 등록일
- 2020.11.28
- 최종 저작일
-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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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1) 영국의 절대주의
2. 영국의 종교개혁
3. 결론
본문내용
앤더슨은 저서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에서 절대주의 국가의 형성의 문제를 그것에 선행하는 봉건제와 연결시켜서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앤더슨은 16~17세기 서구에서 나타난 독특한 형태의 국가 체계 즉 절대주의 국가가 형성된 것이 서구 봉건제에 기인한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주장을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엥겔스는 유럽의 군주정을 두고 “낡은 봉건 귀족과 새로운 도시 부르주아 사이에서 이루어진 계급적 균형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근대의 경제, 정치적 지배계급은 중세와 동일한 봉건 귀족이었다. 수세기동안 형태상의 변화를 겪었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귀족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농노제의 폐지 자체가 농촌으로부터 봉건적 관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논리에서 앤더슨은 정치적 상부 구조 즉 국가에 결정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다시 말하자면 봉건제의 특징인 경제 외적 강제, 개인적 종속, 생산 수단과 직접 생산자의 결합 등이 농노제가 해체되었다고 해서(화폐 지대로 변화했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절대주의는 농노제의 해체에 대한 귀족에의 ‘보상’이었으며 봉건 계급의 정치적 재무장된, 재편된 기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한 것이었다. 따라서 절대주의는 엥겔스가 언급한 것처럼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균형을 위한 중재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봉건 귀족 계급이 완전히 통제하지 못해서 적응해야 했던 증가하는 도시 경제의 위협 속에 귀족 계급이 적응하며 재조직한 통치 기구였다. 농노제의 약화에 따라 봉건영주들은 개별적으로 농민의 잉여를 탈취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그들은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중적인 지배 기구를 통하여 전국적인 차원에서 일반 민중의 잉여를 수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