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식민지 시대 지방유지에 대한 개념과 활동을 통해 식민지시대를 내제화해 나간 조선 지배층의 인식구조 변화를 살펴본다. 이러한 의식구조 내제화의 예시로 만주국의 수립과, 이를 바라보았던 지방유지의 인식을 분석해보았다.
목차
1. ‘지방 유지’에 대한 개념 정의
2. 1920년대 이후 지방 유지의 활동
2.1. 지방 유지의 발전-‘민족 자본’의 형성
2.2. 근대 문물에 대한 양면적 태도
2.3. ‘제국’에 대한 정치 참여
2.4. 향촌 지배
3. 만주국의 성립과 ‘만주 붐’
4. 만주국에 성립에 대한 지방 유지들의 반응
4.1 지방유지의 만주진출
4.2. 지방유지의 자기인식 변화
5. 결론
본문내용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이식된 ‘근대’가 식민지인들에게 어떻게 닥쳐왔는지부터 파악하기 위한 ‘근대성’론의 주요한 논점 중 하나는 지방 유지에 대한 개념이다. 본디 일제 강점기에는 ‘지방 유지’라는 단어가 주로 쓰였는데, 이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유력하고 뜻있는 사람”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종래의 연구들은 ‘지방 유지’라는 개념을 빌려 쓰면서, “재산, 학력, 당국의 신용, 사회적 인망을 갖춘 재지 유력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이들이 “관료-유지지배체제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르면 지방 유지는 분명히 지배체제의 한 축이다. 한편 이와 상당히 유사한 개념으로 ‘지역 유지’라는 개념도 사용되는데, 이는 뜻과 사회적 공공성으로 영향력과 의도적 실천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지역유지와 총독부는 협조 관계를 유지하는 상호 접합의 관계이다. 어느 쪽이든 사회의 인망과 지도력 양자를 중요한 구성 요소로 한다는 데에는 같다. 이를 바탕으로 지방 유지들은 총독부의 중앙 권력 및 근대적 문물의 이식에 협력 및 동의를 하였으며, 이 점에서 근대의 식민 지배는 전근대 향촌사회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근대성론이 연구되면서 지방 유지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이 전개되고 있다. 앞서 ‘지방 유지’를 말했던 지수걸은 이를 행정을 전담했던 관료(군수), 촌락대표자(구장, 면장), 혁신청년 등에 대비되는 전근대 향촌 사회를 주도했던 유지 세력으로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따르면 기존의 연구들은 중간지배층의 외연을 확대한 나머지 유지의 구성원 변동 등에 대해 유용함을 제시하지 못한다. 또 그들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식민지 권력의 근대성이 전근대와 차별되는 여러 장점을 가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들에 유혹된 유지들이 식민지 권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협력했다는 근대성론을 만들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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