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이 추구하려던 것은?
- 최초 등록일
- 2020.05.26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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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습문제>
도연명은 “나는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면서 벼슬을 버리고 「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가 살았다. 그가 전원생활을 통해 추구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자.
목차
1. 들어가며
2. 들어가서
1) 도연명의 생애와 당대 시대적 배경
2) 도연명이 전원으로 돌아간 이유
3) 도연명이 전원생활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것
3. 나오며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며
국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예로부터 국화를 사랑한 이들은 많았으나, 송나라의 주돈이 ‘ 국화를 사랑한다는 말은 도연명이후로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도연명은 국화를 사랑한 대표적 문인으로 꼽힌다. 본고에서는 국화와 술을 사랑했던 시인, 도연명의 일생과 작품 등을 통해 그가 전원생활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을 추측해 보고자 한다.
2. 들어가서
1) 도연명의 생애와 당대 시대적 배경
도연명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으나, 기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를 좇고자 한다. 도연명은 동진 애제 흥녕 3년(365)에 강주 심양군 시상현(지금의 장시성 주장현의 서남쪽)에서 태어났다. 연명(淵明)-혹은 원량(元亮)-은 자(字)이고, 원래 이름은 잠(潛)이다. 그의 나이 29살에 관료 생활을 시작하지만, 한 자리에 오래 있지 않았으며 결국 41세 때에는 아주 관직 생활에서 물러나게 된다. 후에 그는 고향에 돌아가 스스로 괭이를 들고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술과 국화와 달을 벗 삼아 시를 읊는 깨끗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63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아름답게 전원의 정경을 읊은 시들과 <오류선생전>,<도화원기> 등 뛰어난 산문들을 많이 남겨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일본의 문학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문학가로 평가받고 있다.
도연명이 살던 시기는 역사상 동진(東晉)말에서 송(宋)초로, 매우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였다. 도연명이 태어나기 30여 년 전, 진나라는 북방민족에게 쫓겨 건강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참고 자료
이치수 역주, 도연명 전집, 문학과 지성사, 2005
안영욱 역, 독산해경 : 도연명 시선,
계몽사 편, 인명사전, 계몽사, 1993
심경호, 김시습 평전, 돌베개, 2003
윤석우(2005), 음주시에 나타난 중국시인의 정신세계, 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