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서대문 형무소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3.10.22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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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대문 형무소
2.서대문 형무소의 어제와 오늘
3.느낀점
본문내용
시작하며...
하늘은 검은 먹구름을 잔뜩 물고 있던 일요일 오후 여자 친구와 함께 서대문 형무소를 찾게 되었다. 5월 25일은 서울 축제의 날 이여서 서대문 형무소로 가는 길이 엄청 막혔다. 서대문 형무소라고 하면 항상 떠오르던 것은 모래시계의 마지막 장면과 영화나 드라마에서 교도소 장면이 나오면 항상 나오던 그런 곳으로만 생각을 하며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갔다.
서대문 형무소의 어제와 오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에 위치한 서대문 형무소는 대한제국 말에 일제의 강압으로 지어져 80여년 동안 우리 근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 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기관이었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제 점령하고, 이 땅을 발판 삼아 대륙으로 침략하려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그들의 침략에 항거하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투옥시키기 위한 감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한 제국 시대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건립한 독립문 근처에 1907년부터 대규모로 감옥을 지었다. 이 감옥은 일본인의 설계로 그때 화폐 약 5만원을 들여 지었고, 480평 규모의 감방과 80평 정도의 부속 시설로 수용인원은 500 여명 정도였다. 그때 전국 8개 감옥 총 수용인원이 300 여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규모의 감옥이었다. 1908년 10월 21일에 경성감옥(京城監獄)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뒤 일제에게 우리의 국권이 빼앗기자 이에 항거하는 민족 독립 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일제는 수많은 우리의 애국지사들을 체포 투옥시켰다. 수용인원이 증가하자 그들은 마포 공덕동에 또 다른 감옥을 지었고, 이 때문에 1912년 9월 3일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참고 자료
서대문형무소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