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최초 등록일
- 2020.02.03
- 최종 저작일
- 2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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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Ⅲ. 결론
본문내용
서론
사역을 시작한지가 4년째이다. 필자는 사역시작부터 설교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는 사역을 시작하고 여름쯤 되었을 때다. 그 당시 사역하던 교회에서 방학 때 교육전도사들에게도 설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유치부 아이들에게 설교를 하는 것보다 알아듣는 어른들에게 설교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고민 끝 첫 설교는 필자를 더욱더 설교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첫 설교의 기억이 생생히 남을 정도로 요즘말로 흑역사를 남겼다. 하필이면 그날 주어진 본문이 아가서였고 하필이면 그날에 내 또래 청년들이 새벽기도에 참석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가서였기에 내 기억의 사랑을 설교에 녹아 냈고 듣도 보도 못한 설교를 들은 또래 청년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사용하여 내 설교를 요약하여 보내기까지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청년들끼리 돌려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청년들과 더욱 친밀해지기는 했지만 설교를 하는 필자는 사뭇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3년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다른 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옮긴 사역지에서는 오후설교도 교육전도사에게 맡기기에 요즘 더욱 설교에 고민이 깊어진다.
본론
과제의 주제가 “역사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지만 이에 앞서 먼저 설교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설교 비평가로 유명한 정용섭은 설교는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그는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설교자들이 우선 성서의 놀라운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성서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 텍스트 안에, 그 성서 언어 안에 무엇이 존재한다. 그것은 물론 하나님의 계시다. 그런데 그 계시는 이 세상의 역사와 긴밀히 결속되어 있다.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면 설교자는 늘 성서의 변죽만 울리고, 값싼 은총론에 떨어지거나 도덕군자연하고, 결국 그런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성서는 도구화되고 말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