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침략과 서희의 외교
- 최초 등록일
- 2020.01.10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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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 서희
1-1) 서희는 누구인가
1-2) 서희의 사회진출
1-3) 서희의 직책과 서희의 역할
2 . 소손녕
2-1) 소손녕은 누구인가
2-2) 소손녕의 거란내 입지
3 . 거란의 침략과 서희의 외교
3-1) 거란 침략 배경과 고려의 내부 사정
3-2) 서희 외교 논점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서론
거란은 1차 침략에서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와(실제로는 6만 병력 이하일 것으로 추정.)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단교하며 거란에 복속할 것을 주장하였다. 당시 고려인들의 영토의식 상 항복론이나 할지론이 우세하였고 오직 서희만이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서희가 직접 단신으로 적진 한복판에 찾아가 적장을 만나 담판을 벌이고 오히려 강동 6주를 받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당시 고려인들의 영토의식을 살짝 엿보는 것과 동시에 서희와 소손녕을 비교하여 각 인물들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시대상황과 거란의 침략과정 그리고 고려의 대응과 서희의 외교 담판 논점, 그리고 담판 이후 정세 변화를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 서희
1-1) 서희는 누구인가
서희는 이천 서씨 가문으로 어렸을 적에는 염윤이라 불리었다. 그의 아버지는 서필이고 재상급 관직인 내의령까지 올랐었다. 서희의 할아버지는 서신일이고 이천 일대에서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다. 신라 헌덕왕 대부터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호족이었다. 서필이 관직을 받아 수도로 가면서 개경(지금의 평양)으로 넘어와 서희도 개경에서 살았다. 서희는 성품이 엄하고 삼갈 줄 알았는데 다시 말해 분수를 알고 판별력도 있었다. 이는 아버지 서필의 성격을 닮은 것인데 그 예로 <<고려사>>서필전에 따르면 고려 4대 왕 광종이 서필에게 금으로 만든 술그릇을 주니 서필이 “이미 받은 총애와 혜택이 과분한데 금 그릇을 주시니 분수에 넘치는 것이라 더욱 송구스러우며 신하가 금 그릇을 사용하면 임금은 무슨 그릇을 써야 하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자진해서 왕을 찾아가 말하길 “원컨대 성상은 공 없는 자에게 상 주지 말고 공 있는 자를 잊지 마십시오.” 라고 하였다. 이에 광종이 이튿날 측근을 보내 그들이 누구인가 물으니 “공 있는 자는 원보식회가 바로 그런 사람이고 공 없는 자란 바로 너희들이니 이대로 아뢰라”고 말하였다.
참고 자료
<<고려사>>
<<고려 실용외교의 중심 서희>> 신복룡, 박현모 외 지음. 서해문집 출판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교 서희의 외교담판>>장철균 지음. 살림 출판사
<<고려거란전쟁>>안주섭 지음. 경인문화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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