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초 유럽의 위기
- 최초 등록일
- 2019.12.28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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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 초 유럽의 위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경제, 종교, 정치적 시련
2. 반세기에 걸친 종교전쟁
3. 전율의 시기(30년 전쟁)
4. 어둠에서 빛을 찾아서(마법과 철학)
5. 문학과 예술
Ⅲ. 결 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종교의 억압 속에 있던 중세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하면서 유럽사회는 큰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1560년에서 1660년 100년 동안 일어난 종교전쟁으로 인해 경제적 곤경과 문명의 심각한 위기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철의 세기”라고도 불리던 이 시련의 시대를 맞아 유럽의 각 나라들은 어떻게 대처하였으며 이 당시에 발전하였던 사상과 예술에 대해서 알아보자.
Ⅱ. 본론
1. 경제 ․ 종교 ․ 정치적 시련
우선 경제적으로는 1551년에서 1600년 동안 서유럽에는 엄청난 가격 상승 추세가 일어났고 이를 가격혁명이라 한다. 그 원인의 첫 번째로 인구증가를 들 수 있다. 인구는 15세기 말부터 흑사병으로 인한 감소 이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업 기술상으로는 현저한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로 인해 수요 증가를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가격상승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번째는 은의 유입이다. 에스파냐령 아메리카로부터 엄청난 양의 은이 유입되었다. 이로 인한 통화량의 급격한 증가는 가격상승을 부채질하였다.
그 영향으로 사업가와 지주들에게는 이득을 주었지만 노동 대중은 기아로까지 모는 끔찍한 고통을 주었다. 화폐의 실질 가치의 하락과 전쟁으로 인한 전비의 증가로 더 많은 실질 수입이 필요한 정부는 무작정 세금을 올렸다. 그러자 극빈자들은 크게 항거하였다.
종교적으로는 카톨릭교도와 프로테스탄트 교도는 서로를 살아 있어서는 안 될 사탄의 앞잡이로 보았다. 또한 군주 국가들은 종교적 통일성을 강요하면서 종교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폭등하는 물가로 말미암아 곤궁해지고 종교 동란으로 인해 고통을 겪던 당시 사람들에게 각국 정부는 지방적 차원과 헌정적 차원의 불만을 야기 시켰다. 이는 정부가 위의 이유들 때문에 중앙 정부를 강조하면서 신민들을 더욱 강력하게 통치하려 했기 때문에 이에 맞서 신민들은 여러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로 지배자들은 이전과 달리 통치의 위기를 맞아야 했다.
참고 자료
민석홍 엮음, 『프랑스 혁명사론』(까치, 1993)
버너, 서양문명의 역사 Ⅱ-Ⅲ, 소나무
P. Gay & R. Webb, 『서양근세사』(법문사, 1983). 박무성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