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외교사_요약8_세계분할의 완료 (1875-1899, 1913)
- 최초 등록일
- 2024.03.13
- 최종 저작일
-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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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1890년대부터 유럽시대는 끝났고 비유럽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는 유럽의 정치가 안정될 수 없는 역사적 단계에 접어들음. 어느 지역 문제이건 전 세계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세계는 강대국들의 국제정치 '틀'에 들어가게 됨
- 근대국가 : 식민지 국가, 경제 국가, 군사 국가
- 식민지 국가로서의 근대 국가 완성 : 유럽 열강의 세계 팽창의 완료
- 경제 국가로서의 근대 국가 발전과정 : 자본의 무국경성 → 밖으로는 제국주의적 팽창, 안으로는 계급의 갈등 초래. 계급의 무국경성 → 모체인 근대국가에 대항 (공산주의 운동 대두)
- 군사국가로서 근대국가의 발전 : 군부세력의 등장과 그 강화. 군사기술의 발달로 일시적인 군사동맹이 아니라 군사안보 일반을 염두에 둔 일반적인 군사동맹의 필요성이 대두됨
-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유럽 열강의 동북아 진출은 1894 중일전쟁과 1904 러일전쟁으로 완료
- 1882년 영국의 이집트 병합으로 유럽의 아프리카 분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902년 보어 전쟁의 종식으로 이 지역의 잠식도 끝남 → 유럽 열강은 다시 지중해와 발칸으로 돌아감
1.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이집트 문제
- 유럽 이외의 국가들이 근대화, 서구화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 → 외국 차관에 의존
- 이집트 : 1875-1876 이스라엘의 근대화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영국과 프랑스 부채의 상환이 불가능해짐 → 이집트의 재정상태 악화, 국제정치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
→ 1876.11 영국, 프랑스 이집트 경제를 공동으로 지배키로 합의 (~1882)
- 1882 '강베타 각서' : 이집트의 현존체제가 더 위험을 받게 되면 간섭하겠다고 경고
→ 독일은 영국-프랑스가 긴밀하게 되자 국제회의 소집 요구 (1882.6 콘스탄티노플 대사회의)
- 이집트의 국내 사태 혼미, 외국에 대한 저항 강베타 각서 문제로 더욱 격렬
→ 튜픽(이집트 태수) :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사미내각 구성
→ 양국은 이 내각의 해체를 요구하는 최후통첩 보냄
- 1882.7 영국은 군사행동 결심 (수에즈 운하의 자유 운행 보장 위해)
→ 영국 :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공동보조 요청하였으나 이들은 군사개입이 초래하게 될 국제적인 여파를 우려해 군사동원 기피. 영국의 단독 군사행동 (~1954 까지 군사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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