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9.08.21
- 최종 저작일
- 2013.06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 본 문서(hwp)가 작성된 한글 프로그램 버전보다 낮은 한글 프로그램에서 열람할 경우 문서가 올바르게 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최신패치가 되어 있는 2010 이상 버전이나 한글뷰어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차
1. 칼뱅의 삶과 제노바에서의 종교 개혁
2. 칼뱅이 끼친 영향(프로테스탄티즘의 확산)
3. 칼뱅의 사상
4. 칼뱅에 대한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장 칼뱅은 1509년에 피카르디의 누아용에서 태어났다.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난 칼뱅은 자연스럽게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12살에 이미 성직을 받게 된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칼뱅은 아버지의 권유로 잠시 법학을 배우다가 다시 신학의 길로 되돌아온다. 법학을 배우면서 에라스무스와 인문학에 흥미를 느꼈으며 이를 통해 1532년에 고전인 세네카의 <관용론>의 주석서를 출판하며 유명해졌다. 그 후 계속 신학을 공부하던 칼뱅은 갑작스럽게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게 된다. 이런 태도 변화가 언제, 무슨 동기에 의해 일어났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고 다만 칼뱅은 이를 훗날 저작에서 ‘아직도 내가 가톨릭의 미신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께서 돌연히 나의 마음을 인도해주셨다’라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칼뱅이 프로테스탄트로서의 움직임을 처음으로 보인 것은 1533년이었다. 친구가 파리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하자 칼뱅이 연설문을 칼뱅이 작성해주었는데, 그 속에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말을 인용하여 프로테스탄트 사상을 삽입한 것이다. 이로 인해 칼뱅은 고향 누아용으로 대피했고 1534년 그곳에서 자신의 성직을 포기하고 가톨릭과 완전한 결별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일부 신교도들이 가톨릭의 미사에 반대하는 벽보를 뿌려 프랑스에서 신교도 탄압이 본격화되자 칼뱅은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의 바젤로 옮겨갔다. 1536년, 그곳에서 그는 박해받는 신교도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게 된다. 이 책은 당시의 가톨릭 지배자들을 대상으로 쓴 것으로서 종교개혁을 대변하는 일종의 교리서와 같았다. 앞선 수 세기 동안의 신학자들의 견해를 모아 체계화했고, 종교 개혁의 당위성과 그 성격을 설명했으며 신앙의 본질에 대한 논쟁적인 주장을 펼쳤다. 루터의 성경이 독일어로 출판되어 독일의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칼뱅은 이 책을 라틴어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로도 출판함으로서 프랑스어 권 대중들에게 신교도를 체계적으로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참고 자료
남홍진, 『종교 개혁과 프로테스탄트』, 태훈, 2007
올리비에 크리스텡, 채계병 역, 『종교개혁 - 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 시공사, 2001
롤란드 베인턴, 홍치모 역, 『종교개혁사』,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배영수, 『서양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2009
슈테판 츠바이크, 『폭력에 대항한 양심』, 자작나무,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