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연암
- 최초 등록일
- 2017.04.13
- 최종 저작일
- 2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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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생애
2. 작품
3. 작품 특징
4. 요약 및 느낀점
본문내용
1. 생애
1-1. 박지원의 생애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사상가, 외교관, 소설가이다. 1737년(영조 13)에 열상외사 박사유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그는 성장하면서 신체가 건강하고 암기에 능하였다. 박지원은 1752년(영조 28) 16세에 이보천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에게는 <<사기>>를 비롯하여 주로 역사서적을 교육받고, 시 짓는 법, 글과 문장 쓰는 법을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22세 때부터 원각사 근처에 살 때 박제가,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등과 이웃하여 깊은 교우를 맺었다. 홍대용과도 사귀면서 지구의 자전설을 비롯한 서양의 신학문을 배웠으며, 북학과 이용후생의 방법을 토론하였다. 이후 할아버지 박필균이 죽자 생활이 더욱 곤궁해져 요양 차 북한산에 들어가 독서에 매진하였다. 이듬해 봄에 이윤영을 찾아가 주역을 배웠고 그 뒤 과거시험에 전념해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한다. 다시 과거에 응시하지만 여러 번 과거에서 낙방한다. 당색으로는 노론 명가였지만 사회의 부조리와 폐단을 계속 지적한 탓에 그의 답안지는 채택되지 않았다. 그는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 그리고 청나라에 존재한다는 신문물 연구에 전념하게 된다.
1780년(정조 4) 44세 때 삼종형 진하사 방명원을 따라 북경을 갔다. 이때 건륭제가 열하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어 박지원은 일행과 함께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궁이 있는 열하에 갔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발달된 사회를 보고 실학에 뜻을 두게 된다. 그의 대표작 <<열하일기>>는 이때의 견문을 기록한 것으로 이용후생에 관한 그의 구체적 견해가 담겨 있다. 이 저술로 인하여 그의 문명이 일시에 드날리기도 하였으나, 어떠한 형식이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하여 이상한 글을 쓴다는 이유로 문단의 호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노론임에도 열하와 베이징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청나라와 서구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