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총선의과정
- 최초 등록일
- 2014.06.13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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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5.10 총선의 과정
2. 4.3사건
3. 이승만과 김구
본문내용
5.10 총선의 과정
1948년 3월 4일 주한미군사령관 하지는 5월 9일에 총선실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 실시할 선거는 보통 · 평등 · 비밀 · 직접 · 자유 등 민주선거의 원칙에 입각하여 실시, 선거법은 추후 한국인대표 및 유엔위원단의 요구에 따라 선거법을 제정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남조선 총선거 실시에 관한 특별 성명을 발표하였다. 한편, 미군정하 남한에서의 유일한 대의입법기관이었던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남북 협상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김규식 의장을 비롯한 관선의원 측과 가능한 지역 내의 선거 및 정부수립을 주장하는 민선의원 측 간의 대립 끝에 2월 23일 본회의 에서 주로 관선의원인 김규식의원 등 28인의 의원이 사퇴 한 가운데 가능한 지역 내에 서 총선 실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과도입법의원은 동년 3월 17일 자유 · 평등(대일부역자 제외) · 비밀선거, 임기 2년, 정원 200명 등을 주요골자로 한 전문 57조로 된 입법의원선거법을 제정 · 공포(남조선과도정부 법률 제5호)하는 한편 김동성, 김법린, 김지환, 노진설, 이갑성, 이승복, 박승호, 백인제, 오상현, 윤기섭, 장 면, 김규홍, 최윤동, 최두선, 현상윤 등 15인을 중앙선거위원으로 선출하였다. 과도입법의원은 1948년 5월 19일 스스로 해산하기로 의결하고 그 다음날 공식 해산되었다. 후보와 선거 전입후보자는 모두 948명으로 이승만이 이끄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235명, 동아일보 중심의 언론계 출신과 자본가 계급, 그리고 일본 및 미국 등에서 해외 유학을 하고 돌아온 지식인 계층 등이 조직한 보수 우익 정당인 한국민주당이 91명, 대동청년당이 87명, 조선민족청년단이 20명, 대한노동총연맹이 12명,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이 12명의 후보를 각각 냈다. 그리고 기타 43개 사회단체 및 정당이 86명을 후보자로 내세웠으며, 무소속은 무려 전체 입후보자의 44%인 417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