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0.11.30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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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통신사에 대한 조사 리포트입니다.
목차
1. 조선통신사의 정의
2. 조선통신사 파견 목적
3. 조선통신사 파견 의의
4. 당인춤
5. 결론
본문내용
1. 조선통신사의 정의
통신사는 조선시대 일본의 막부로 파견되었던 국가의 공식적인 외교사절이다. 조선중국일본간의 사대교린 외교체제가 성립될 조선 태종 당시, 조선국왕과 일본 막부장군은 양국의 통치권자로서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의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는데 조선이 일본에 파견하는 사절은 ‘통신사’, 일본이 조선에 파견하는 사절은 ‘일본국왕사’라 불리었다. 이 때 ‘통신’이라는 용어는 두 나라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교류한다는 뜻으로 쓰였으나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모든 사절이 ‘통신사’라는 명칭을 사용 한 것은 아니었으며, 때에 따라 ‘보빙사’, ‘회례사’, ‘회례관’ 등의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모두 조선 국왕의 명에 의해 막부 장군을 접견하였으나 파견되는 계기나 편성에 있어 모두 일괄적으로 통신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통신사로 규정할 수 있는 원칙은 우선 조선 국왕으로부터 일본 장군에게 파견되어야 하고, 그 파견의 목적에 있어 회례나 보빙의 의미는 없어야 한다. 또한 사절단은 중앙관리 3인 이하로 편성되어야 하고 통신사 또는 그에 준하는 국왕사의 호칭을 써야한다.
최초의 통신사는 세종 10년 11월에 편성된 뒤 이듬해 일본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귀국하였던 정사 박서생을 필두로 한 사절단이라 할 수 있다.
2. 조선통신사 파견의 목적
통신사의 성격은 크게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임진왜란 전의 경우, ‘일본국왕사’는 주로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한국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은을 가져와 대신 생필품을 가져갔다. 또한 일본에서 선종이 부흥하자 조선의 대장경과 범종을 구하여 갔다. 이에 반해 조선의 사절은 대개 정치, 외교적 목적으로 일본에 건너갔는데 특히 왜구의 금지 요청이 주를 이루었다.
임진왜란 후의 경우, 일본과의 전쟁상태 종결을 위한 강화, 수로체결, 피로인 쇄환, 대마번의 견제 및 일본국정 탐색, 막부장군의 습직 축하 등 매우 다양한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직후에 파견 된 사절단은 통신사라는 칭호 대신 ‘회답 겸 쇄환사’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는데 이 명칭은 일본이 조선에 강화를 요청한 데 대하여 조선은 아직 도쿠가와 막부를 정식의 정권 및 대등한 관계의 교린국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