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품관인법
- 최초 등록일
- 2010.11.12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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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중세 구품관인법의 운영과 왜곡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구품관인법의 도입 배경
1.호족사회의 추세
2.위나라의 구품관인법
Ⅲ.구품관인법의 운영 및 왜곡
1.초기 구품관인법의 운영
2.서진 시기 구품관인법의 왜곡
Ⅳ.남.북조 귀족 사회
1.남조의 귀족제
2.북조의 귀족제
Ⅴ.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머리말
문벌 귀족사회란 귀족 또는 호족이라고 불리는 사회계층들이 널리 존재해 그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을 책임지는 중심적 지위에 있었던 체제를 말한다. 여기서는 귀족사회를 위.진 남북조 시대부터 수당 시기까지를 귀족사회라 정의하겠다. 그 이유에는 위나라의 구품관인법의 시행으로 인해 귀족제가 보편화 된 이후 진나라를 거쳐 남북조에 전성기를 이루며 수당시기 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이런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수나라부터는 과거제가 실시되기 시작하면서 귀족의 힘이 점차 약화되면서 문벌 귀족제의 종언을 가져왔다 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문벌 귀족사회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위․진 남북조 시대를 위주로 설명하고자 한다.
지금부터는 구품관인법이 도입되는 배경을 설명한 후 구품관인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끝으로 이로 인해 귀족사회가 전개되는 남조와 북조의 모습을 설명하겠다.
Ⅱ.구품관인법의 도입 배경
1.호족사회의 추세
귀족제 사회를 성립시켰던 사회적 조건으로는 먼저 한(漢) 대를 통해서 각지의 향촌사회 속에서 호족이 점차 성장하여 특히 후한시대에 와서 그 향촌지배가 크게 발전하였던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초기 한나라는 향촌사회를 보면 자영농민들이 가족형태를 이루며 모여 살았는데 여기에는 ‘부로(父老)’라고 불리는 인생경험이 풍부한 연장자를 중심으로 자치단체를 운영해 나갔다. 이 부로는 일반적으로는 그 지역에서 신망 있고 덕이 있는 노인을 뽑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농업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향촌’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많이 가진 자와 못가진자 사이의 계급이 발생하게 되었고 가진 자는 토지를 겸병했으며 이것이 시간이 흘러 대토지를 소유하는 호족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에 따라 토지를 잃은 농민은 호족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었으며 호족은 그 지역사회의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향촌의 부로는 덕망 있는 인사가 아닌 일정한 자산을 갖춘 호족 중에 선발하게 되었고 향촌의 지배질서가 호족들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참고 자료
미야자치 이치사다,임대희 역, 『 구품관인법의 연구』,소나무,2002
임대희 외 저 ,임대희 역, 『위진남북조사』,서경문화사,2005
신성곤,윤혜영, 『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서해문집,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