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 최초 등록일
- 2010.09.20
- 최종 저작일
- 2006.07
- 1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표해록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신에 대해
2. 국법의 엄격함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에 자리한 금남 최부와 그 아버지 최택의 묘
3. 환관에 대한 생각
4. 유교사상
5. 말의 어원
6. 부정부패
7.불교에 대한 생각
8.사대주의 사상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조선 성종 연간에 관인 최부 일행이 제주도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 천신만고 끝에 중국 절강성 영파부 연해에 도착했다. 최부 일행은 왜구라는 혐의를 받고 고초를 당한다. 그러나 곧 혐의를 벗고 중국 군리의 호송을 받으며 항주에서 운하를 따라 북경에 이른다. 북경에서 황제를 알현하고 상사를 하사받은 후 요동반도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돌아온다. 약 6개월간의 견문기를 일기체로 써서 임금에게 바치니, 이 기록이 바로 표해록이다. 표해록은 모두 세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류한 인원은 43명이었다.
제 1권은 금남이 제주 추쇄경차관으로 임명되어 현지에 부임하게 된 경위를 약술한 다음,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상을 서둘러, 홍치 원년 윤전월 초 3일 배를 출발시켰으나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 중국 절동 지역에 상륙하여, 2월 4일 소흥부에 이르러 왜구의 혐의를 완전히 벗을 때까지를 기록한 내용이다.
제 2권은 2월 5일 절강성의 수도 항주에서 출발하여 3월 25일 천진위를 지날 때까지의 내용이다.
제 3권은 그들이 북경 회동관에 도착하여 약 25일 동안 체채하면서 황제를 알현하고, 북경을 떠나 요동반도를 거쳐 6월 4일 압록강을 건너 의주에 도착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최부는 6월 4일 드디어 압록강을 건너 밤중에 의주에 도착했다. 금남은 우두외양에서 의주까지 6개월 동안의 견문기를 끝낸 다음. 강남과 강북으로 구분하여 산천과 교량, 운하의 제방, 수문과 체운소, 풍속 등을 요약 정리하였다. 해박한 중국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실제 견문한 바를 종합한 그의 기술은 현장감이 넘친다.
최부가 관찰한 명의 문화는 유교적 질서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강남을 여행하고 난 뒤 북경의 풍정을 평가하면서 “여염 사이에서는 도교와 불교를 숭상하되 유교를 숭상하지 않으며, 상업을 숭상하되 농업을 숭상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여행을 마치고 난 뒤 명나라의 문화를 총평하면서 강남과 강북이 공통적인 것은 상하 ․ 존비의 질서가 없으며, 귀신이나 불교와 도교를 숭상하고 상업을 중시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