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전쟁사
- 최초 등록일
- 2010.06.24
- 최종 저작일
- 199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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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 전쟁의 역사를 전쟁별로 정리 하였습니다
목차
1.거란의침입 (契丹-侵入)
2.구주대첩 (龜州大捷)
3.여진정벌 (女眞)
4.개평싸움(開平-)
5.강동성싸움 (江東城-)
6.구주싸움 (龜州-)
7.몽고의 침입
8.개주전투(价州戰鬪)
9.합단의침입 (哈丹-侵入)
10.동녕부정벌 (東寧府征伐)
11.홍산대첩 (鴻山大捷)
12.황산대첩 (荒山大捷)
본문내용
1218년(고려 고종 5) 고려·몽골·동진(東眞)의 연합군이 고려의 강동성(평양 동쪽)에서 거란[契丹]의 잔적(殘賊)을 쳐부순 싸움. 오랫동안 고려를 침범하여 괴롭혀 왔던 거란을 완전소탕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1218년 9월 거란군이 은주(殷州:殷山)로부터 남하하여 강동성에 입거(入據)하자, 몽골은 원수 합진(哈眞)이 이끄는 1만의 군대와 동진의 장수 완안 자연(完顔子淵)이 이끄는 2만 명의 병력을 연합하여 “거란군을 토멸하고 고려를 구한다”고 성언(聲言)하고 동북면으로 내려와 적의 거성(據城)인 화주(和主:永興)·맹주(孟州:孟山)·덕주(德州:德川)·순주(順州:順川)를 차례로 쳐부수고 적의 주력이 있는 강동성으로 쳐내려왔다. 그러나 때마침 많은 눈이 내려 군량의 보급로가 끊어지자, 강동의 적은 성벽을 굳게 닫고 공격군을 피로하게 하려 하므로 몽골 장수 합진은 서북면원수부(西北面元帥府)에 사람을 보내어 군량을 요구하면서, 거란을 소탕한 뒤에 여·몽 양국이 형제의 의를 맺을 것을 약속하는 통첩을 칭기즈칸의 이름으로 전해 왔다.
12.황산대첩 (荒山大捷)
1380년(우왕 6) 9월 이성계(李成桂)가 전라도 지리산 근방 황산에서 왜구(倭寇)를 격퇴시킨 싸움. 이보다 앞서 1376년 홍산(鴻山)싸움에서 최영(崔瑩)에게 대패한 왜군이 78년 5월 지리산 방면으로 다시 침입하였고, 80년 8월에는 진포(鎭浦:錦江入口)에 500여 척의 함선(艦船)을 이끌고 침입, 충청·전라·경상 3도의 연안지방을 약탈·살육하여 그 참상이 극도에 달하였다. 이때, 원수 나세(羅世)·최무선(崔茂宣) 등이 화통(火?·화포(火砲)로써 왜선을 격파, 전부 불태워버리자 퇴로를 잃은 왜적은 더욱 발악을 하여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이성계를 양광(楊廣)·전라(全羅)·경상도순찰사(慶尙都巡察使)로 임명, 이 지방의 방위책임을 맡게 하였다. 적은 함양(咸陽)·운봉(雲峰) 등의 험지(險地)를 택하여 동서로 횡행하므로, 이성계는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남원(南原)에서 배극렴(裵克廉) 등과 합류, 각 부서를 정비한 다음 운봉을 넘어 황산 북서쪽에 이르렀을 때 적과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