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의 토지소유와 봉건
- 최초 등록일
- 2010.06.06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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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경제사 시간에 읽은 `조선시대 양반의 토지소유와 봉건`에 대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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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 글은 조선시대 양반의 토지소유를 중세의 봉건론과 연관시켜서 설명한 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封建은 양반 사대부의 自尊意識의 표상이고 그 존재의 大名分이었다. 양반은 봉건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민심이 안정되어 나라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조선전기 양반의 토지소유는 단순한 토지의 소유가 아니고, 농장경영은 단순한 대토지의 경영이 아니었다. 이경식,「조선전기토지제도연구 Ⅱ」, p.556
신분과 경제적 능력이 함께 이어지는 중세시대에서 양반의 토지소유는 경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양반의 토지 소유 역시 사적 소유권에 입각하고 있으므로 개간, 매득, 상속, 증여 등의 방식을 통해 일반 민인과 같이 토지를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일반 민인과의 차이는 배후에서 신분을 바탕으로한 권세와 위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양반 사대부의 신분성을 바탕으로 노비를 활용한 토지의 경작 및 관리가 가능하였다. 이처럼 양반의 토지 겸병은 봉건적 토지소유의 발현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농장이 성립한 것이다.
이처럼 양반의 토지소유와 농장경영 역시 조선전기
이번에 ‘朝鮮前期 兩班의 土地所有와 封建’을 비롯한 세편의 논문들을 읽으며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이러한 토지제도에 대한 글을 읽으며 중세 봉건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조선시대 농민, 조선시대 토지제도에 대한 미시사적 접근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조선전기 농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연구할 때 조선왕조실록이나 경국대전에 실린 관료들의 상소문이나 왕과 관료들이 남긴 말, 사건의 기록을 통해 그 당시 상황을 유추하다보니 실제 농민의 삶을 유추하는 수밖에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독일의 역사학자 위르겐 슐룸봄이 그의 저서 ‘미시사의 즐거움’에서 17세기 18세기 독일 소작농의 편지 등을 통해 독일 소작농민의 일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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