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탐방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0.04.22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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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에 위치한 도동서원을 방문한 것을 바탕으로 만든 리포트
목차
1. 답사 준비
2. 도동서원 가는 길
3. 도동서원 알기
4. 도동서원 둘러보기
5. ‘우유함영(優游涵泳)’
6. 서원교육 알아가기
7. 서원교육이 초등교육에 시사하는 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답사 준비
선생은 날마다 「소학」과 「대학」의 글을 강독하고 외워 학문의 규모로 삼고 그리고 ‘성’(誠)과 ‘경(敬)’을 힘주어 주장하였다. ‘존양(存養)’ ․ ‘성찰(省察)’을 체(體)로 삼고,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용(用)으로 삼아 위대한 성인의 경지에 이를 것을 기약하였다. 평상시 닭이 첫새벽에 울면 반드시 머리를 빗고 세수하고 의관을 반듯하게 하여, 먼저 집안 사당에 가서 절하고, 다음 어머니께 아침 문안을 드리고, 서재에 나가 바르게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배우는 사람들을 이끌어 마음을 다스리는 요령을 강론하는데,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는 하학(下學)공부를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의리(義理)로 말하는 것이 곡진하면서도 게으르지 않았다. 저녁에 부모에게 잠자리보아 드리기를 예절대로 하고, 밤늦도록 학문을 강론하고 마치었다. 이와 같이 30여년을 함에, 정밀함이 쌓이고 노력이 오래되니, 학문이 넓으면서도 잡박하지 않았고, 통달하면서도 잘못된 데로 흐르지 아니하고, 견고하고 확실하며 독실하여 오히려 급하게 서둘러 행동이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하였다.
위의 글은 이적이 찬한 김굉필 선생의 행장(行狀)에 대한 얘기이다. 이 짧은 글 하나를 읽으면서 우리는 30여 년을 학문을 배움에 노력하였고, 또한 후진을 가르치는데 게으름이 없던 선생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교사가 되고자 하는 우리의 교육사 유적 관련 답사 장소를 도동서원으로 결정지었다. 김굉필 선생은 누구신가?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선생과 더불어 조선 5현의 수현(首賢)으로서, 조선의 선비로서는 최초로 성균관 문묘에 배향을 받은 분이 아니시던가. 도동서원 답사를 준비하며 우리는 선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김굉필 선생(1454년-1504년)은 서흥 김문(瑞興金門)으로서 자는 대유(大猷)이고 , 호는 한한훤당(寒暄堂)으로 스스로 지어 불렀다. 한훤당은 단종 때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서 달성군 현풍에서 성장하였고, 1504년(연산군 10년) 51세의 나이로 전라도 순천의 유배지에서 후명을 받아 죽는다.
참고 자료
『조선유학사』(현상윤, 현음사, 2003)
『조선 유학의 학파들』(한국사상사연구회, 예문서원, 1996)
『조선 시대 서원과 양반』(윤희면, 집문당, 2004)
‘네이버 백과 사전’ http://100.naver.com/
`도동서원 홈페이지‘ http://www.daegustory.com/me-000.htm/
‘문화재 지식 정보 센터’ http://www.cha.go.kr/cultural_info/infoMainList.a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