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중 후기
- 최초 등록일
- 2003.11.06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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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불교의 융성
사서의 편찬
권문세족과 사대부
최씨정권의 통치기구
삼별초
대장경
전시과
풍수지리설
본문내용
고려 불교는 교계의 발전보다는 현실생활과의 접촉면에서 더 사회적인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고려의 귀족들도 여전히 불교를 국가나 개인의 현세에서의 행복을 좌우하는 현세이익의 종교로 생각하였다. 어떤 공덕을 쌓음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공덕사상이 그 뒷받침이 되었다. 많은 사찰을 세우고 각종 불교행사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모두 그러한 때문이었다.
태조는 개경의 법왕․왕륜․흥국 등 10사를 위시하여 많은 절을 세웠지만 그의 ‘십훈요’의 제1조에서도,
우리 국가의 대업은 정녕 여러 부처님의 호위하는 힘에 의지한 것이다. 그런고로 선․교의 사원을 세워 주지를 차견하여 분수케 하고 각기 그 업을 닦게 하라.
고 하였다. 사찰의 창건이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 갖고 있지 않음을 알 것이다. 문종 21년에 12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된 2800간이 넘는 흥왕사는 그러한 비보사찰의 대표적인 것이다. 이리하여 개경에만도 70개에 이르는 사찰이 연립하는 성황을 이루어 불교국가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