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문화사 13주차
- 최초 등록일
- 2017.06.16
- 최종 저작일
-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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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나라의 전 역사가 격동의 세월을 보냈지만 그 중에서도 60년대, 70년대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격동의 시대이다. 1960년대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한일국교 정상화 등과 같은 정치 사회적으로 더불어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 현대 사회의 이정표가 되는 시기라고 부를 수 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수립하기 위해서 정부는 제 1차 결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전쟁 이후 인명손실도 컸지만 경제적 기반 시설도 거의 제로였기 때문에 정부는 공장과 산업기반의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립 경제의 기반구축에 각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해방 이후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기 이전까지 미국의 무상원조는 약 31억 달러에 달하고 있었는데 1954년에 국무 회의록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는 유효하고 적절히 하도록 노력하고 만일 미국이 이에 불응할 경우에는 이를 거절하여도 좋다는 기록이 있다. 국무 회의 기록물은 국정을 위해서 대통령 및 국무총리와 15명에서 30명 정도의 국무위원들이 구성된 정책회의 자료 내용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현재 대전 국가기록정보센터에 보관되어 있고 1949년부터 2001년 동안의 국무기록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50년대 중반에 실시된 이러한 국무회의내용처럼 국가의 경제자립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에 미국의 원조는 60년대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제자립을 위해서 미국의 원조는 유효하고 적절한 발판으로 활용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제 3공화국이 출범하고 박정희 정부의 관주도 경제 계획과 그에 따른 실행은 매년 GNP8%에서 9% 사이에서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산업경제를 인위적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전통적 가치관의 변화가 발생하고 물질만능주의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 개인주의 사상이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격동기에서 연극계는 거의 멸망상태에 빠져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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