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침례교회사
- 최초 등록일
- 2009.03.19
- 최종 저작일
-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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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침례교회사`를 읽고 요약한 것입니다...
목차
1편 펜윅과 초기 한국 선교
2편 대한기독교회와 일제 통치
3편 해방과 침례교회 시대
맺음말
본문내용
대한제국이 고립 무원의 망국의 기로에 서서 조정과 백성이 태평양 너머에 있는 미지의 나라 미국에 대하여 가장 우호적 기대와 양대인의 그늘을 찾고 있을 때 펜윅 선교사는 한국 땅에 발은 들여놓은 것이다.
1장 펜위 선교사와 초기선교사 활동
펜윅은 어릴 때부터 엄격하고 경건한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그의 신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장로교 목사님 매킨토시와 그의 어머니 바바라였다.
그는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하여 ‘오대호 연한의 나이아가라에서 사경화의 거장들과 함께 여러 해 동안 성경공부를 하였으나 그 사경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성격 강사들이 어느교단에 속한 인물인지 몰랐으며 선교에 대한 교단적인 특색 또한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나에게는 모든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증인이라는 생각과 승천하신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생각이 기독인으로서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라고 했다.
펜윅은 소래에서 1년 정도 생활하면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다, 함경도 원산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가 원산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이미 장로교의 언더우드 선교사와 선교의 연관을 맺고 있던 소래가 펜윅의 ‘남의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리라’는 신념에 거리낌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래에 대한 인간적인 절망도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는 1891년 원산에 정착함으로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초로 원산에서 선교사업을 착수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1892년 원산에서 요한복음을 한국어와 한문으로 병행하여 발행하였고, 이로써 앞으로 자신이 수행할 선교사역의 구체적인 준비와 기틀을 하나씩 마련하고 있었다.
1893년에서 1896년까지 펜윅은 일시적으로 귀국을 하여서 선교사역의 준비를 하였다.
1894년 펜윅은 엘라 씽 기념선교회의 최초 선교사로서 1895년 한국에 파송되었던 파울링과 함께 당시 유명한 침례교 목사인 고든 목사와 한국에 피어선 기념성경학원을 세운 피어선 목사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고, 1896년 봄. 펜윅은 한국순회선교에서 파송한 선교사의 자격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