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체가 형식 조사
- 최초 등록일
- 2008.08.21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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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기체가 형식 조사 자료입니다.
목차
◎고려후기 시가의 새로운 양상
경기체가
경기체가의 일반적 이해
*형식
시조
시조의 일반적 이해
시조 개요
시조
1.명칭과 정의
2.양식의 특징
3.주제 및 내용
본문내용
◎고려후기 시가의 새로운 양상
고려후기는 향가가 사라진 시기였다. 향찰 표기법으로 우리말 노래를 적는 관습이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고, 향가라고 하는 문학의 갈래가 역사적인 종말을 고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문학사의 커다란 흐름을 역사 전반의 동향과 관련시켜 이해해야만 그 이유와 의미가 드러난다.향가는 신라이래의 귀족문학이었고, 고려 전기에는 신라의 전통을 이은 문벌 귀족이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상층문화를 담당했기에 어떤 형태로든지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무신란이 일어났고 문벌귀족의 지배체제가 무너지자 향가를 이을 수 있는 기반이 사라졌던 것이다.
고려후기의 지배 세력은 권문세족이라 할수 있으며, 신흥 사대부는 이에 대항하는 세력이었다. 권문 세족은 양난(무신란․몽고란)과 원의 간섭이 있을 때 비정상적으로라도 권력을 잡았지만, 상층 문화를 재건할 능력은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향락에 빠져 그전에는 볼수 없었던 속악가사와 송악정재를 등장 시켰다. 이에 불만을 가진 신흥 사대부는 불만을 가지고 상층 문화를 가다듬고, 지배 체제를 정비할 수 있는 이념을 마련 하고자 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경기체가(景幾體歌), 시조(時調), 가사(歌辭)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결과를 보면 선명하게 정리 될 수 있어도 일거에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계획된 것이 아니고, 기존의 문학적 관습과 다각도로 얽힌 상황에서 그렇듯이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경기체가
경기체가의 일반적 이해
경기체가는 고려 고종 때 발생하여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까지 독립된 한 시가 형태로 존재하다가 임란이후 자취를 감춘 시가이다. `경기체가`라는 명칭 외에 `별곡(別曲)` 혹은 `별곡체(別曲體)`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들 노래가 말미에 반드시 `위 ~景 의 엇더 니잇고[景幾何如]`라는 문구를 붙이기 때문에 거기서 경기(景幾)라는 말을 따서 경기체가라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