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보 선생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8.04.29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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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위당 정인보 선생에 관하여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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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13년 동제사 조직(중국 상해)
․동아일보 등 논설위원으로 국혼환기
․1948년 초대 감찰위원장 역임
․1950년 6․25전쟁 당시 납북 사망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일제(日帝)의 그 혹독한 탄압속에서도 「五千年間 조선의 얼」을 집필하여「얼」만이 眞이요 實이라 하시며, 一言, 一事, 一行, 一動이 깡그리 骨子가「얼」이어야 한다고 「얼思想」을 강조하여 民族精神을 깨우친 爲堂은 1913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비밀결사인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였으며 붓과 펜으로 일제와 싸우며 국학(國學)보급과 민족문화 앙양에 일생을 바쳤다.
어려서부터 재기가 넘쳐 17세에 양명학을 깨우치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을 팔아 독립운동기지 건설자금으로 지원하다
1911년과 1912년 두 차례 망국의 한을 품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동북성 회인현 흥도촌(懷仁縣 興道村)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 三源堡) 등지에서 활동하는데 이곳에서 독립기지를 건설하고 있던 이회영(李會榮) 형제를 만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평땅 4백~5백 석거리 전답을 팔아 신흥강습소 등 이회영 형제의 독립군양성소를 위한 군자금으로 지원하였다.
선생은 1913년 중국 상해로 활동무대를 옮기여 일제와의 투쟁을 다짐하는 박은식(朴殷植)․신규식(申圭植)․신채호(申采浩)0104金奎植) 등 많은 청년애국지사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이들과 비밀결사인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조국광복운동에 정열을 바치는 한편 굶주림과 외로움을 견디면서 동서양의 많은 서적을 탐독하여 연구에 몰두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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