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 최초 등록일
- 2007.12.30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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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과학사에 대한 이해에 대한 연구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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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성순보』와 『한성주보』가 나오던 1880년대는 개국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들이 바깥 세계에 제대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1881년에 보통 신사유람단으로 알려진 ‘일본국정시찰단’이 일본에 가서 일본 여러 분야를 시찰하고 1882년 38명의 유학생이 천진 기기창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왔는데 2년 간에 걸친 한국인들의 노력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서양의 과학기술이라는 점이다. 1883년 발행이 시작된 『한성순보』가 이런 정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개화사상가들에게 나라의 급선무는 바로 국민의 견문을 넓히고 국민을 교화시키는 일이었으므로 개화사상가 박영효와 유길준이 창간한 이 신문의 발행 취지 역시 국민교화와 국민의 문견을 넓혀서 나라를 혁신하고 부강을 이룬다는 내용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일본과 청 두 나라에 다녀온 일행 모두 근대 과학기술의 습득을 위해 간 것이었으므로 근대적 신문이 국민을 위해 가장 많이 다룬 내용이 과학기술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한성순보』난 창간호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이 전통은 『한성주보』에도 계승된다. 당시 두 신문에 실린 기사는 경우에 따라 과학기술을 다루는 경향의 차이가 보이기도 하고 둘 다 내용이 잡지기사 경향을 띠기도 하지만 이런 기사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1세기 전의 한국인들이 어떤 과학기술 내용에 관심을 보였던가를 알 수 있다.
『한성순보』의 기사들은 국내기사․외국기사․집록의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대부분의 과학기술 소개는 이 가운데 피처 스토리 또는 특집기사라 할 수 있는 집록에 나타난다. 집록은 전체 건수로 볼 때는 얼마 되지 않으나 기사는 모두 아주 긴 것이다. 전체 분량으로 볼 때 『한성순보』의 과학기술 기사는 어느 분야보다도 단연 많다. 『한성순보』에는 집록 이외에도 특히 해외뉴스 가운데 외국의 여러 가지 과학기술 관계 보도물이 많은데 특히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기사들을 내용에 따라 나눠보자면 우선 첫 번째로 지구설․지구의 운동․세계지리 내용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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