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 최초 등록일
- 2007.07.05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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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퇴계 이황에 관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1. 이황의 생애 & 저술
2. 이황의 철학사상
1) 이기론
2) 심성론
3) 수양론
* 사칠논쟁
3. 이황 이후 학파
4. 마치며..
본문내용
1. 이황의 생애 ․ 저술
퇴계 이황은 (退溪 李滉, 1501~1570)조선 중기의 중신으로서 이동설(理動說)·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등 주리론적 사상을 형성하여 주자성리학을 심화·발전시켰으며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성은 이, 이름은 황, 본관은 진보(眞寶)이며 자는 경호(景浩)이다. 호는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옹(陶翁), 지산(芝山), 영지산인(靈芝山人), 청량산인(淸涼山人) 등이고 시호는 문순공(文純公)생애 ․ 저술 출처 ⇒ http://mtcha.com.ne.kr/koreaman/sosun/man117-1-ihoang.htm
퇴계의 시호를 문순공이라 한 것은 도덕 문화에 밝았으며(道德博門日文), 모든 언행에 있어서 티 없이 맑고 용의 길을 걸어왔다는 뜻에서(中正精粹日純)이다. (김유혁, {우리에게 있어서 李退溪는 누구인가}, 항산문고, 2001 p14)
이다.
좌찬성 식(埴)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 하 에서 자랐다. 12세 때 작은아버지 이우로부터〈논어〉를 배웠고 20세경에는 건강을 해칠 정도로 〈주역> 등의 독서와 성리학에 몰두했다. 1527년(중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이듬해 사마시에 급제했다. 1533년 재차 성균관에 들어가 김인후(金麟厚)와 교유했으며, 이때〈심경부주 心經附註〉를 입수하여 크게 심취했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등용된 이후 박사·전적·지평 등을 거쳐 세자시강원문학·충청도어사 등을 역임하고 1543년 성균관사성이 되었다. 1546년(명종 1) 낙향하여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에 양진암(養眞庵)을 지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