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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1. <도산십이곡>에서의 자연
2. <농가구장>에서의 자연
II. 결론
본문내용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 역사를 거듭하면서 항상 자연과 친밀하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욕구를 숱한 문학 장르에 매개하여 여러모로 드러내 왔다. 사대부의 시가에서 자연이란 소재는 그러므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의 경관을 이루는 아름다운 자연은, 때로는 그들에게 멋들어진 오락거리가 되어 주었고, 때로는 조정의 아귀다툼에 밀려나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다난했던 역사였지만 사대부들의 나라는 어떻게든 그 명맥을 이었고, 그들의 자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펼쳐진 경치를 뿌듯이 돌아보며 짓는 한 수의 시조는, 한편으로는 지은이의 거울이며 발자취인 것이다.
그렇기에 초목을 바라보거나 강호에 몸을 뉘이며 지은 글귀라고 하더라도, 순간적인 여흥 정도로 단순히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들의 시조를 읽으며 간접적으로 투영된 그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엿보려 해야 한다. 미의식을 대입하기에 무엇보다 적합한 소재이기 때문에, 그만큼 정신적으로 동화되기에도 쉬운 것이 또한 자연이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전해 오는 수많은 시조들에는 저마다의 길과 저마다의 삶을 가지고 있었던 사대부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묻어난다.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언제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범속한 인간이건대, 하물며 사대부들이라고 달랐을까. 같은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르게 노래할 수 있는 것, 당연하지만 그만큼 분명한 이 ‘차이’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명종 20년(1656)에 완성되었다고 추정되는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은 65세의 만년에 지어진 12수의 연시조이다. 주희의 이기론을 기반으로 한 이기이원론을 주창하며 조선 성리학의 발전적 계기를 마련했던 이황의 <도산십이곡>에는 대석학의 심오한 사상과 고매한 인격이 녹아들어 있다. 반면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위백규의 <농가구장>에는 사뭇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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