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개혁론과 개혁운동의 추이
- 최초 등록일
- 2007.01.27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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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대 개혁론과 개혁운동의 흐름을 양무개화론과 문명개화론으로 나누어 썼습니다. 분량은
10p로 세 장 반이고, 각주 달았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한국근대사에 있어서 필요한 과제는 근대 민족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안으로는 기존의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밖으로는 제국주의 체제의 침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근대 국민국가의 건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개혁론은 계급적 차이와 내부의 사상적 차이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먼저, 일본・청국・미국・영국 등의 열강의 조약을 체결하고 개항을 한 이후에, 약탈적인 외래 상품 자본이 침투하여 봉건 경제에 위기가 오는 사회경제구조의 문제에 대응하여 지배층의 개혁론은 크게 두 가지 분파로 구분되어 전개되었다. 양무개화론과 문명개화론이 그것이다.
먼저, 양무개화론은 조선이 유교에 의해서 교화되었기 때문에 전면적인 개화를 주장하지 않았다. 즉, 동양의 유교 도덕 같은 정신은 유지하고, 다만 서양의 기술문명을 수용함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는 동도서기론에 기반하여 개화정책을 추구해 나갔다.
이들의 개혁론 정부로부터 받아들여져 양무개화론자를 중심으로 개화정책이 추진되었다. 적극적인 개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하여 1880년 청의 제도를 본 떠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사대・교린・군무・변정・통상・군물・기계・어학・전선・이용 등 12사를 두어 각기 해당사무를 관장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그 명칭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신문물의 수용과 부국강병을 보다 효과적으로 도모하기 위해 개편한 행정기구였다. 이와 더불어 군제도 개편하여 종래의 5군영 대신 무위영과 장어영 등 2영을 두었으며 군무사 아래에는 신식군대를 별도로 조직하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신식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참고 자료
변태섭,『한국사통론』, 삼영사, 1999
김도형,「한국의 근대화와 개화사상」,『동양학』,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