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서동요
- 최초 등록일
- 2005.09.18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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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동요
2. 서동요 설화
3. 향가의 명칭과 유래
4. 무왕(武王)
5. 선화공주
6. 서동요의 의의
본문내용
통일 신라 이전의 향가로는 현재 '서동요','풍요','혜성가'만이 그 원사가 전한다. 이들 노래는 모두가 4구체로서 율격이나 내용이 대단히 단순하다. 이는 대체로 전래 민요가 후대에 와서 정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노래 '서동요'도 전래 민요가 정착된 것으로, <삼국유사>에 전하는 배경 설화는 전래 민요로서의 '서동요'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결부된 후대의 이야기일 것이다. 또, 배경설화와는 달리 실존한 특정 인물이 아닌 가공적 인물, 또는 설화상의 주인공이 역사화된 인물로 바뀐 것으로 보기도 하며, 사찰의 연기 설화로 파악하여 백제가 망할 무렵 왕실의 원찰이었던 미륵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백제와 신라가 과거부터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기록 그대로를 신빙한다면 「서동요」는 6세기경의 노래이다. 그러나 이 사실만 가지고서 향가의 성립을 6세기경으로 판단하면 잘못이다. 왜냐하면 「서동요」이전에도 비록 가사는 전해 오지 않지만 작품명만이라도 알려져 오는 노래가 여러 편 있기 때문이다. 3세기 초 내해왕 때의 「勿稽子歌」, 5세기 전반인 눌지왕 때의 「憂息曲」이 있었는가 하면 특히 1세기 초 (A.D. 28) 유리왕때의 「도솔가」를 나라에서 제정하였다는 기록은 향가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인가를 알려 주는 좋은 자료로서 주목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구전가요가 아닌 기록가요로서 향가가 최초로 성립된 연대는 유리왕 5년이고 그 작품은 「도솔가」이다. 이처럼 1세기 초에 「도솔가」로부터 출발된 향가는 그 이후 형식과 내용 양면에 걸쳐서 점진적인 발전을 거듭한 끝에 현전하는 작품을 기준으로해서 서기 6세기 전반 融天師의 「혜성가 」에 이르러 10구체라는 완성된 시형태를 낳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