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경영] 우리나라 호텔의 발달과정
- 최초 등록일
- 2005.08.06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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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호텔발달과정과 각 과정별 호텔 사진을 모아 정리해보았습니다.
목차
(가) 초기 ∼ 고려시대
- 고대의 숙박 시설
(나) 조선시대
- 조선시대의 숙박시설
(다) 개항 ∼ 1950년대
- 최초 호텔의 생성
- 철도호텔 등장
- 상용호텔 등장
- 민영 호텔 등장
(라) 1960년대 이후
- 1960년대의 호텔업
- 1970년대의 호텔업
- 1980년 이후
본문내용
(가) 초기 ∼ 고려시대
- 고대의 숙박 시설
한국의 숙박시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타나는데 관영(관영)으로서 역관(역관)이 신라 소지왕 9년에 개설되었다. 역관은 주로 관리들의 지방 순찰시 숙소로서 이용되었던 곳이다. 신라의 삼국 통일후 장보고에 의해서 당(당)나라에 신라방(신라방)이 건립되어 정치·외교사절이나 유학을 하고 있는 신라인들에게 숙소로 제공되었다. 장안(장안)으로 가는 길목에는 신라관(신라관)이나 신라원(신라원)이 설치되어 여행객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 고려(고려)시대에는 참역제(참역제)가 발달하여 역마를 두고 역장, 역리 등의 관리가 있어 공문서의 전달, 공물의 수송, 공무로 왕래하는 관리들에게 교통 및 숙박 등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또한 최초로 공설주막이 개설되어 선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절간에서도 숙식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그리고 고려말에는 송(송)나라와 활발한 무역거래를 행하면서 두 나라 상호간에 속박시설을 만들어 사신과 상인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였다.
(나) 조선시대
- 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참역제가 지속되어 역이 산재하고 있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전국에 약 537개의 역이 있었으나 새로운 숙박시설인 관(관)이 여행을 하는 관리들을 위하여 지방관위에 부설되었으며, 하급숙박시설로 원(원)이 설치되었으나 원은 그 사용범위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점차로 폐지되고 일반여행자를 위한 점(점:주막)이 발달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의 관은 대부분 한성에서 의주까지 설치되었다. 한성에는 명나라의 사신을 위한 태평관, 일본의 사신을 위한 동평관, 여진족을 위한 북평관이 건립되었는데 임진왜란 때에 태평관이 불타버리자 과거시험 장소인 모화관을 태평관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