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백제의 대외관계
- 최초 등록일
- 2005.07.10
- 최종 저작일
- 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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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절 중국왕조와의 관계
1. 대중관계의 시작
2. 대중관계의 전개
3. 대중관계의 성격
제 2절 백제의 요서영유(설)
제 3절 왜와의 관계
1.대왜관계의 시작
2.대왜관계의 전개
3.대왜관계의 성격
본문내용
이 시기에 왜에서 즉위한 성덕(聖德)태자는 왜의 독자성을 강조하며, 독자적으로 수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백제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거리를 두고 외교를 펴게 된다. 이러한 왜의 태도 변화는 백제를 자극하고 말았다. 이는 수에서 왜국으로 귀국하던 사신을 사로잡아 그가 가지고 있던 수의 국서를 빼앗는 사건이 발행하게 되는데 왜의 독자적인 외교정책에 대한 백제의 불만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왜의 대수접근과 배제의 외교문서 탈취로 인한 양국사이의 긴장된 관계는 무왕의 후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회복되게 된다. 이러한 정세변화에서 백제와 왜국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풍장(豊璋)을 왜국에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백제내의 지배세력간의 갈등이 어느 정도 조정되고, 왜 조정 내에서의 친백제 세력을 재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백제와 왜는 무왕 말경에 이르기까지는 우호관계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백제와 왜와의 관계는 백제에서 의자왕이 즉위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된다. 의자왕은 즉위 후 무오아의 말기에서부터 비롯된 지배족들 내의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친위(親衛)정변을 거행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그런데 백제에서 추방되었던 이 교기를 왜의 실권자였던 소아하이(蘇俄蝦夷)대신이 우대하였다. 이러한 왜의 교기에 대한 태도는 백제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였다.
이러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의자왕은 대좌평인 사택지적(沙宅智積)을 왜에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한반도의 신라와 중국의 당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되자 백제나 왜에서도 서로의 관계를 다시 정립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의자왕은 왕자인 부여풍(夫餘豊)을 왜에 파견하였다.
참고 자료
백제의 역사와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