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진경산수
- 최초 등록일
- 2005.06.03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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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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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왕조가 바뀌고 이념이 바뀌어 가면서 예술의 양식도 변화해간다. 예술 변화의 바탕에는 항상 이념 변화가 있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전통모습과 어떤 문화에서 진경산수화가 탄생되었느냐를 알아야 한다. 조선시대의 초기에는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서민들은 불교양식의 생활에 익숙했다. 지배층들은 유교를 이념으로 내세워 적극 권장하였고 집현전을 설치하여 신진세력들을 내세워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문물제도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단종 폐위․연산군의 난 등으로 점점 쇠퇴하고 백성들은 여전히 불교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이런 백성들에게 진정한 성리학을 가르칠 수 있는 수 있는 학자들도 점점 사라져갔다. 이때의 그림은 성리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철저한 중국풍의 그림으로 나타났다.조선 중기부터는 퇴계 이황,․율곡 이이 등 대학자의 출현으로 성리학이 조선 고유의 사상으로 토착화되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점점 예술도 변화해 갔다. 그림에서는 우리산천을 긍정적으로 보고 그것을 표출시키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예술의 변화는 이념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장인은 단지 기술을 습득하고 그것을 세습시키는 것에 그치지만, 진정한 예술가는 이치를 터득하고 생각할 줄 알며 사물의 관찰을 통한 자기시대의 이념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한다.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던 산수화로서,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개척하였다.본 적도 없는 막연한 중국의 자연을 그리던 화풍에서 벗어나 한국의 산천을 화폭에 옮기고자 하는 기운이 왕성해지면서, 기법 상으로는 18세기에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한 남종화(南宗畵)법을 가미하여 형성되었다.
참고 자료
한국미술사 / 안휘준저
한국회화사 / 안휘준저
한국미술의 자생성 / 한국미술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