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시대의 양반
- 최초 등록일
- 2005.04.20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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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레포트 에이뿔 받은거예요!!!
유용하게 쓰시길 바래요!!!
목차
Ⅰ. 서 론
■ 양반(兩班)의 개념
Ⅱ. 본 론
< 양반(兩班)문화의 내용과 형식 >
■ 양반(兩班)의 형성
■ 양반(兩班)의 특권
■ 양반(兩班)의 생활
Ⅲ. 결론
■양반사회의 신분변화
본문내용
Ⅰ. 서 론
< 양반의 개념 >
- 양반이라는 용어의 본래 의미는 조정에서 의식 등이 치러질 때, 그곳에 참석하는 현직 관료들을 총칭하는 것이었다. 고려, 조선 시대에 걸쳐 국왕은 중국 역대 왕조의 황제를 모방해서 의식 등에서는 남쪽을 보고 관료들을 대했는데, 국왕을 향해 오른쪽 즉 동쪽에 문관이 위치하고, 왼쪽 즉 서쪽에 무관이 늘어서는 것이 관례였다. 양반의 ‘반’은 열을 의미하는데, 양반은 두 가지 열, 즉 문관들이 늘어서는 동반과 무관들이 늘어서는 서반의 총칭이었던 것이다.
관제상의 문무 양반체제로 발전하는 것은 995년(성종 14) 고려가 당나라의 문·무산계(文武散階) 제도를 받아들이면서이다. 이때의 문반은 정치, 무반은 군사를 담당하고 있었을 뿐 문·무반(文武班)에 대한 차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당의 제도를 그대로 채용한 것이기 때문에 실정에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반 위주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1390년(공양왕 2)에 무과(武科)가 설치되고, 92년(태조 1) 문·무산계가 제정 실시되면서 다소 보완이 되었으며, 1436년(세종 18) 무산계에도 정종(正從) 9품이 제정되면서 문·무산계가 갖추어져, 《경국대전》에서 성문화되었다. 이로써 조선조 양반체제의 제도적 기반이 되는 문·무산계는 확정되었고, 관제상의 문·무반이라는 의미의 양반개념도 확고한 제도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양반의 개념은 관료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문·무반직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가문(家門)까지도 양반으로 불리게 되어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가부장적인 가족구성과 공동체적인 친족관계 때문에 양반관료의 가족과 친족도 양반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음직(蔭職)과 과거(科擧)를 통한 관직의 세전(世傳)과 폐쇄적인 혼인관계를 통해 심화되었다. 그리하여 문·무반을 뜻하던 양반의 개념은 지배신분층을 뜻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