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조선성리학
- 최초 등록일
- 2003.08.19
- 최종 저작일
- 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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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죽음이란 보편적인 인간현상으로 어느 공동체나 체험하는 死者와의 완전한 단절을 말한다. 생명의 소멸인 죽음은 삶과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공동체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각기의 종교전통이 죽음에 대해 어떤 해석을 하고 있는가를 고찰하는 일은 삶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을 확인하는 하나의 지름길이라 생각된다. 신은 인간에게 영원한 초월적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은 오직 신의 섭리에 의해 사는 것이라 믿었다. 현대에도 신앙의 체계에서는 신이 유일한 초월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는 과연 어떤 것인가?
조선사람들은 조상제사를 마치 신앙처럼 견지하였다. 돌아가신 부모는 귀신이 되어 제삿날에는 집에 와서 흠향하고 복을 내려주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론적으로는 귀신이 제수를 흠향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귀신이 제수를 흠향하는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신봉하고 있지 않다.
유교와 성리학은 조선을 이끈 학문이라 말할 수 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가졌던 내세관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고 교훈을 삼고자 한다.
Ⅱ. 유교가 말하는 내세관
공자의 말 중에 "아침에 진리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허망하게 끝난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얻기만 하면 인간의 생명은 죽음에 의해서도 소멸되지 않는 가치를 확보한다고 봄으로써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어느 날 제자 계로가 죽음에 대해 물었을 때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간결하게 답하였다. 이 구절은 결코 공자가 죽음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였다거나, 혹은 사후 세계를 알 수 없는 것이라 보는 不可知論의 입장에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삶의 의미 속에 죽음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죽음의 의미 또한 삶의 의미 속에서 찾아야 할 것임을 제시한 것이다.
유교적 사생관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그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우주의 큰 기운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또한 유교에서는 미시적으로 보면 한 순간의 생각과 행위 속에서 죽음과 삶이 몇 차례든 교차할 수 있고, 거시적으로 보면 긴 역사적 시간을 거치면서 죽음과 삶을 넘나들 수 있다고 본다. 유교 전통에서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을 얻는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알고 따르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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