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간섭기 개혁정치
- 최초 등록일
- 2014.12.20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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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원 간섭기의 사회상황과 개혁의 필요성
1) 토지문제
2) 수취문제
3. 원 간섭기의 개혁정치
1) 충렬왕
2) 충선왕
3) 충숙왕
4) 충목왕
5) 공민왕
4. 원 간섭기의 개혁정치의 성격
1) 신진사대부에 의한 반원개혁이라는 주장
2) 고려 사회 내부의 계급갈등의 해소라는 주장
5.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14세기의 전반의 ‘개혁정치’란 개혁정치란 기존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폭력적이 아닌 합법적인 방법으로 기존의 낡은 제도나 기구를 변화시키거나 개조하는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 ‘게혁안’이란 홍자번의 便民十八事 이하 국왕들의 교서에 나타나고 있는 당시 사회모순에 대한 인식과 그 해결책을 가리킨다.
홍자번의 편민 18사를 비롯하여 충선왕의 즉위교서(1298), 복위교서(1308)의 교서, 그리고 충목왕의 정리도감 등에 제시된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 일련의 정치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당시 고려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부문에 걸쳐 지적될 뿐만 아니라 그 해결책도 제시되었다.
해방 이후 우리 학자들에 의해 원간섭기 연구가 시작된 이후 특히 충선왕대의 정치가 주목을 받아 그 성격이 ‘폐정개혁’ ‘혁신정치’ 등으로 규정되었고 12세기 이후 고려의 무신집권에서 발생한 여러 내적 모순과 원의 간섭에서 발생한 외적 모순이 중첩되어 토지점탈문제와 수취질서의 부패 등 심각한 사회모순을 가져왔고 이는 민을 피폐하는 것과 더불어 국가의 재정난을 가중시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각 왕대의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원간섭기 시기에 각 왕들의 개혁정치를 살펴보고 그 성격을 분석하고자 한다.
2. 원 간섭기의 사회상황과 개혁의 필요성
1) 토지문제
12세기 이후 꾸준한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바탕으로 농민층의 분화가 진전되는 가운데 토지소유의 집중화가 이루어졌다. 토지소유의 집중화에 따라 농장이란 형태의 대토지 지배방식이 출현하였는데 무신집권기를 거쳐 원간섭기에 들어와서는 더욱 확대되었다.
그 결과 13,14세기에는 농장이 당시의 사회경제모순을 집약적으로 반영하는 특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문제로 인식되는 것은 무신집권기에 이르러서이다. 무신정변 이후 집정무인을 비롯한 권세가들의 토지탈점 풍조가 극에 달하게 되는데 그 결과 산천을 경계로 하고 주군의 경계를 넘어갈 정도로 큰 규모의 농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김순자,1992,「14세기 민의 동향과 ‘개혁정치’:원간섭기 민의 동향」『한국역사연구회』
권영국,1992「14세기 민의 동향과 ‘개혁정치’의 내용과 그 성격」『한국역사연구회』
이익주, 1990「14세기 민의 동향과 개혁정치」,한국역사연구회회보,p1-p2
한국비평편집위원회, 2002,「한국 전근대사의 주요쟁점」『역사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