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등록일 2003.05.13 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많은 도움 되시길~^^v

목차

【교육탄압】
【창씨개명】
【병참기지화정책】
【신사참배】

본문내용

일제에 맞서 정면으로 대결해 온 한국민은 일제강점 이후 민족이 광복될 때까지 저항과 개화(근대화)의 구국투쟁과 함께 자율적 발전을 양면에서 거듭해 왔다. 민족의 완전 독립을 위한 한민족의 전통적인 국권회복운동에 관해 일제는 1930년대말부터 황국신민화운동(皇國臣民化運動)이라는 한민족의 말살통치방침(抹殺統治方針)으로서 식민지정책(植民地政策)을 강화해 나갔다.
1920년대 이후 일제의 침략정책 수행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사회주의자들의 의도적 침투로 이중적인 시련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1926년의 6.10만세운동 이후 신간회(新幹會), 근우회(槿友會), 신정회(新正會), 광주학생항일운동(光州學生抗日運動) 등 일련의 독립구국투쟁을 전개해 온 도정(途程)에서 많은 국내외의 독립운동자들이 투옥 감금당하였다. 1920년대의 가변적 문화통치(文化統治)라는「고등경찰책(高等警察策)」을 전개하여 소위 식민지 구축을 달성하였다고 자부한 일제는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한국을 거점지역으로 확보하고 대륙침략 전진정책을 전개하였으며 군수병참기지(軍需兵站基地)로서 착안하여 농업 독려에서 공업 장려책으로서의 정책 전환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일제는 1931년 대륙침략의 전초(前哨)로서 일본 관동군(關東軍) 참모(參謀)로 하여금 만주점령(滿洲占領)을 기도, 봉천(奉天)교외(郊外) 유조구(柳條溝)의 만철(滿鐵)철도를 파괴케 하였다. 관동군사령관(關東軍司令官) 목장번(木庄繁)은 이를 중국군의 소행이라 질타하고 총공격을 명하여 마침내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키고 청의 폐제(廢帝) 부의(溥儀)로 하여금「만주국(滿洲國)」이란 괴뢰정권을 수립케 하였다.(1932년 3월) 이에 중국은 이를 국제연맹에 제소하였으나 중.일 양국에 일임당하고 말아 일제의 결정적인 승리로 귀착된 것이다. 이에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야기시켜 중국 양자강(揚子江) 일대의 넓은 영토를 점령한 노구교사건(蘆溝橋事件)을 일으켰다. 1939년 9월에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영국 등 26개국이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전면전쟁을 일으켰는 바 일제는 이미 각종 징용령을 공포, 전쟁수행을 강화하였으며 세계를 상대로 한 침략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한국을 황국신민화로 채찍질하였다.
따라서 일제는 한국에서 각종 침략 착취 통치를 자행하면서 1941년 10월 동조영기(東條英機)를 총리로 삼아 내각을 성립시키고 소위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실천을 강조한 뒤 12월 8일에는 일본군으로 하여금 말레이반도에 상륙을 개시케 하는 한편 진주만(眞珠灣)의 공격을 개시하여 정박중인 미전함(美戰艦) 주력을 파괴 격침한 뒤 야촌(野村) 내서(來栖)두 대사에게 미국 정부에 대한 최후 통첩을 수교시켰다. 이에 영국 미국은 대일선전포고(對日宣戰布告)를 발표하고 12월 9일 국민정부도 대(對) 독일, 일본, 이탈리아에 선전을 포고하였으며 12월 11일에는 이탈리아가 대미선전(對美宣戰)을 각기 선언함으로써 태평양전쟁(太<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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