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머리말
II. 조선 후기 난(亂)의 배경
1. 사회적 배경
2. 사상적 배경
II. 이차적(二次的) 배경
1. 향회(鄕會)와 요호(饒戶)
2. 집강소(執綱所)
IV. 맺음말
본문내용
난(亂)은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불만의 분출로 그 것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농민들로 대표되는 민란(民亂)이 있고, 다른 하나는 지배계층과 멀지 않은 잔반, 유생 등을 대표로 하는 변란(變亂)이 있다. 민란은 쉽게 말해서 생존권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가혹한 수탈과 역으로 인해 살아가기 힘들어 지자 살고자 하는 의지로 농민들이 모여 지배층에 대한 난을 도모하게 된다. 이러한 민란은 대부분 지배체제를 바꿀 의지가 부족한 단지 생존권 투쟁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낸다. 변란은 점점 심화되어 가는 사회적 모순과 부패한 지배층을 개혁하고자 하는, 향촌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던 저항적 지식인들이 주도하여 정권 탈취를 목적으로 일으키는 무장 반란이다. 변란은 민란보다는 더 체제에 대한 저항감과 개혁의지가 담겨져 있다.
조선 후기는 난의 시대였다.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백성들의 피폐해진 생활, 수많은 유민의 생성과 노비들을 도망으로 인한 명목상 신분제도의 붕괴는 사회 혼란을 가져 왔고 더불어 농민계층, 잔반, 가난한 유생 등의 살기 어려워진 계층들의 불만은 쌓여갔다. 국가의 모순된 통치 구조가 계속되고 관리 층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자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민중들의 열망은 사상적 미신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진인의 등장을 기대하는 정감록이나 오랜 기간 잠에서 깨어난 미륵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미륵신앙 그리고 세상이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다는 후천개벽사상이 시기적절하게 연결되면서 미신은 더 이상 미신이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신앙들은 난의 세력결집에 있어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고, 난의 사회적 배경을 뒤이은 이차적 배경으로 여겨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회적 배경과 사상적 배경을 기반으로 조선 후기 난들은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조선 후기 모든 난들이 단순하게 사회적, 사상적 배경만으로 일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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