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 최초 등록일
- 2013.06.01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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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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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소크라테스.’ 누군가 나에게 소크라테스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중학교 3학년 도덕시간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물론 그 내용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는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인 소크라테스가 4대성인이라는 것뿐이다. 나만 그런 것일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세계 4대 미드필더라든지 우리나라 3대 뮤지션처럼 ‘몇 대 무엇’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어린 마음에 민주주의는 무조건 선이고, 공산주의는 무조건 악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배운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했다는 것에 조금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직접 쓴 글은 없다. 따라서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글로 예상할 뿐이다. 플라톤이야 고등학교 때부터 자주 들어왔고, 또한 플라톤에 대해 공부도 했었기에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크세노폰은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잘 몰라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다.
<중 략>
바울이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안디옥에는 율법과 할례 문제로 적잖은 논쟁이 있었다. 이방인 출신 성도들도 할례를 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울의 견해와 대립되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자문을 구하게 되고 예루살렘에서는 회의가 소집된다. 이 회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당파 현상이 벌어질 판국이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는 율법 엄수를 주장하는 자들의 폐쇄적인 태도를 물리치고,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자각하여 그들을 한 형제로 영접해야 한다고 하는 내용의 결의를 공적으로 선포했다.
내가 제대로 조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조사한 것과 이 책의 내용과는 다르게 보인다. 정치적인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거짓일지도 모르겠지만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의 적대자로 보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12명을 선택한 이유는 가법이 아닌 승법 복음에 기초한 것이다. 바울 또한 마찬가지였다.
1년에 100명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사람은 50년간 일 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총 5천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참고 자료
다음 국어사전 (율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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