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김지하 시인에 대한 과제입니다.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김지하의 생애
Ⅱ. 김지하의 시 세계
1. 시세계의 흐름
1) 생명가치의 상실, 본능적 저항
2) 새로운 삶의 지향과 그로 인한 아픔
3) 생명의 힘에 대한 확신
2. 작품분석
1) 김지하의 저항시
2) 애린의 세계
3) 생명사상
Ⅲ. 결론
본문내용
Ⅰ. 김지하의 생애
본명은 영일(英一)이고, 지하(芝河)는 필명이며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되었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3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4개월의 수감 끝에 풀려난 뒤, 1966년 8월 7년 6개월 만에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번역과 학생 연극에 참여하는 한편, 1969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저항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김지하는 이때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국내외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석방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희곡 《나폴레옹 꼬냑》, 김수영(金洙暎) 추도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하였고, 1970년 12월 첫 시집 《황토》를 발간하였다. 1971년 이후에는 천주교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계속 저항 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참고 자료
김지하, 별밭을 우러르며, 동광출판사, 1989
김지하, 마지막 살의 그리움,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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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남, 최일남이 만난 사람-민중은 생동하는 실체 : 시인 김지하씨, 신동아, 198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