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대의농민반란
- 최초 등록일
- 2010.05.13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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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청시대의 농민반란
목차
◆ 명ㆍ청시대 농민반란의 배경
◆ 등무칠의 난
◆ 양호ㆍ유육형제의 난
◆ 이자성ㆍ장헌충의 난
◆ 명말의 농민반란
◆ 백련교도의 난
◆참고문헌
본문내용
◆명ㆍ청시대 농민반란의 배경
1. 명청시대 농민반란의 배경
1-1. 농민의 다양한 존재 양태
전통시대 중국농민의 다양한 존재양태에 대해서는 종래 지주-전호 관계를 전통 농업사회의 생산관계의 핵심으로 강조하면서도 이들을 각기 하나의 계급으로 단순화 시켰을 뿐 지주와 전호의 다양한 존재양태에 대해서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지주만 해도 특권지주(황실 ,왕부 ,환관 ,신사) ,대지주 ,경영지주 등 여러 모습이 있고 전호에도 장기 ,단기의 고용농, 예속성이 강한 전복(佃僕), 자소작농 등 다양한 모습이 있었다. 여기에중국의 광대한 영역, 다양한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넣는다면 농민의 존재양태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1-2.농민계급
다양한 농민층을 한가지로 ‘농민계급’ 으로 규정하거나 이들이 참가한 반란을 그냥 단순하게 ‘농민반란`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전통 중국사회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직업’ 으로서의 농민은 있었으나 법률적으로 ‘신분’, ‘계급’ 으로서의 농민은 없었다. 전통시대 중국의 농민은 전제권력의 일률적 지배( 토지국유제에 입각한 수전농민에 대한 지배
제민지배)의 대상이었다. 토지소유권이 보장되어있고, 형사 ,민사상의 각종사안에 대해 법(지방관)에 호소할 수 있었으며, 직업선택이나 신분상승의 길도 어느정도 열려있었다. 과거에 합격하면 하루아침에 관료가 될 수도 있었다. 호적제도, 이갑, 향약, 보갑과 같은 각종 인보조직이 있었지만 농민의 생활을 규제하는 공동체 규약은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전제지배체제하의 농업 사회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농민이 고향을 떠나 유망하거나 이주, 개간의 길로 나서는 사례가 매우 빈번했으며, 인구의 대류현상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사회가 바로 명청시대 중국사회였다. 따라서 전통 중국사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계급사회라고 할 수 없고, 이런 이유에서 전통시대 각종 반란은 농민계급이 일으킨 ‘농민반란’ 이라기보다 다양한 형태의 민중이 일으킨 ‘민중반란’이라고 부르는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참고 자료
명청시대 사회경제사, 오금석 외, 2007, 이산
중국의 역사 대명제국, 송정수 외, 2006, 도서출판 혜안
중국민중 반란사, 다니가와 미치오, 1996, 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