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표기법의 변천사
- 최초 등록일
- 2010.04.22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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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어 표기법의 변천사
목차
1. 고대 국어 표기법
2. 중세 국어 표기법
3. 근대 국어 표기법
4. 개화기 국어 표기법
본문내용
(라)「諺文綴字法」(1930)의 형태주의 표기법의 반영
(마)「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의 형태주의 표기법 확립
(바)「한글 簡素化 方案」(1954)의 음소주의 표기법으로의 회귀
(사)「國語正書法案」(1971)의 절충적 표기법
(아) 현행 「한글 맞춤법」(1988)의 형태주의 표기법 계승
받침의 측면에서 보면, 형태주의적 표기법은 형태소의 기본형을 밝혀 언제나 고정시켜 표기하는 것이므로, 음소주의적 표기법에 비해 받침의 수가 많다. 「訓民正音」(1446) 例 義는 `終聲復用初聲`으로 해례의 `八終聲可足用`에 비해 받침의 제한이 없으므로, 더욱 폭 넓게 형태의 기본형을 밝혀 표기할 수 있다. 따라서 전자가 형태주의적 표기 원리에 해당 된다면, 후자는 음소주의적 표기 원리를 따르는 것이 된다.
근대 국어 시기에는 일정한 규정이 없이 해례의 8종성법이 지켜지다가 7종성법으로 굳 어지는데, 이는 음소주의적 표기법에 해당된다. 그러나 그 사이 끊어적기의 확대와 같은 형태주의의 인식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國文硏究所의 「議定案」(1909)에 이르러 받침이 「訓民正音」(1446) 例義의 `終聲復用初聲`의 원리를 채택함으로써 형태주의적 표기법이 대두 되기에 이른다.
일제 시대에는 「普通學校用 諺文綴字法」(1912)에서 받침이 전통적인 7종성법에 따라 10개로 제한되어 음소주의적 표기법으로 돌아갔으나, 「普通學校用 諺文綴字法 大要」 (1921)에서 받침의 확대가 고려되다가, 「諺文綴字法」(1930)에서 21개가 쓰여 형태주의 원리가 실제로 반영되고, 다시 朝鮮語學會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에 이르어 28 개로 더욱 확대되어 가장 많은 수의 받침이 쓰이게 되었다.
이는 다시 「한글 簡素化 方案」(1954)에서 전통적인 10개 받침으로 제한되어 음소주의로 회귀하는 듯하기도 했고, 「國語正書法案」(1971)에서는 받침을 15개로 제한하는 절충적 입장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이들은 실행되지는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