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 최초 등록일
- 2002.05.05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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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지금부터 5백년 전에 태어난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은 조선조의 연산군 7년(1501)에서 선조 3년(1570)까지 생존한 성리학자로서, 후배 학자인 율곡 이이와 더불어 흔히 조선조 성리학계의 두 거봉으로 숭앙되는 인물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학문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하여 이미 많은 업적을 남겨 놓고 있고, 또 그의 생애에 관하여도 거의 상식에 속한다 할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태어나 16세기라는 동일한 시대를 살며 영남이라는 동일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또 한 명의 학자가 있다. 조선 중기의 거유(巨儒)인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72.) 선생이다. 두 인물은 각기 도덕과 경의를 학문의 모토로 삼아 영남 일대의 학문적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둘은 기질과 학풍, 현실관 등에서 분명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실학자 이익(李瀷)은 “퇴계의 학문이 바다처럼 넓다면 남명의 기질은 태산처럼 높다”고 함축적으로 대비시켰다. 퇴계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기질의 소유자로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심화 발전시켜 간 모범생 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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