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제국주의화에 대한 심층분석
- 최초 등록일
- 2010.01.13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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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사][일본 역사]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제국주의화
목차
1. 들어가기
2.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제국주의화
(1)일본의 개항
(2)막부 타도 운동
(3)메이지 유신
(4)메이지 정부의 국민 만들기-징병제과 의무교육
TIP. 메이지 천황의 순행(巡行)
(5)이와쿠라 사절단(1871.12.23~1873.10.13)
(6)정한론(征韓論)
TIP.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7)대일본제국헌법의 공포
[사료] 메이지헌법
(8)천황숭배 작업 -교육칙어와 어진영
[사료] 교육칙어
(9)청일전쟁과 일본 자본주의의 발전
(10)러일전쟁
[사료]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와 아시아
[사료] 러일전쟁 당시 반전론
3.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기
도쿠가와 막부는 미국의 무력에 굴복하여 개항하였다. 그러나 개항은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개항 이후 계속되는 경제적 혼란은 양이론을 부채질하였고 막부의 권위는 실추되어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와중에 조슈번과 사쓰마번을 중심으로 막부를 타도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결국 막부가 무너지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메이지 정부는 각종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였고 중앙집권 정책과 더불어 징병령과 의무교육 등을 통하여 ‘국민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한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함으로써 청과 러시아를 차례로 물리치고 동아시아의 강자로 등장하였다.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의 한 켠에 자리 잡았고 일본에 의해 한국은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 개항으로부터 러일전쟁의 승리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제국주의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2.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제국주의화
일본의 개항
막부는 18세기 말부터 러시아‧영국‧미국의 통상요구를 받았으나, 쇄국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1840년 영국이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굴복시키고 1842년에는 홍콩을 빼앗았다는 소식을 듣고 쇄국정책을 완화하여 외국 선박이 접근하면 연료와 식수를 공급해주고 물러가도록 했다. 그러던 중 1853년과 1854년, 두 차례나 현재의 가나카와현 우라가에 페리 제독이 미국 군함을 이끌고 나타나 강력하게 통상을 요구했다. 당시 여론은 개국 반대론이 우세하였으나 미국 군함의 위력에 굴복한 막부는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 가나카와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일본이 미국 선박에 대하여 식품연료‧식수 등을 공급하고, 두 개의 항을 개항하고, 미국 영사가 일본에 주재하며, 미국에 최혜국대우를 하는 것 등이 내용이었다. 이어서 막부는 영국‧러시아‧네덜란드 등과도 같은 조약을 맺었다.
막부는 1858년에는 미국과 불평등한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일본이 가나카와 등 4개의 항구를 열고, 상업 활동을 위해서 외국인이 에도와 오사카에 머무를 수 있도록 개방하며, 개항장에서 미국인의 거주와 치외법권을 인정하고, 영사재판권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특히 협정관세 규정은 관세자주권을 부정하는 불평등 조항이었다. 막부는 같은 해 러시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와도 같은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였다.
참고 자료
강동진 지음,